붕괴(1)

우리는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by Dahl Lee달리

그 붕괴 사고가 일어난 후, 우리는 감쪽같이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땅속으로 꺼진 이 건물에는, 반지하 높이에 지상으로 이어진 한 뼘 높이만 한 가로로 긴 창이 있다. 갖은 수를 써서 깨려고 해 봐도 도저히 깨지지 않는 창. 그를 통해 우리는 바깥에서 분주히 오가는 발걸음들을 보지만, 저들은 우리를 보지 못한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닿지 않는다. 이 세계와 저 세계는 마치 다른 우주인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고가 벌어지고 초기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사건을 이해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곧 포기하고 이 안에 일어나는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 건물은 도심에 위치한 2층짜리 창고형 쇼핑몰이었다. 갑작스럽게 쇼핑몰이 들어선 땅이 무너져 내리며 그 위에 건물마저 땅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아주 깊게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니었다. 건물의 1층은 완전히 토사에 매몰되었지만, 무사한 건물 2층 창문으로 주변 지상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이 보일만큼의 깊이로만 무너졌다. 기운 좋은 사람이 기어올라가면 충분히 나갈 수 있는 높이였다. 황당한 것은 밖으로 나가는 모든 문이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바깥으로 통하는 1층의 문은 토사에 완전히 매몰되어서 2층에서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유일한 문이었다. 사람들이 가구코너에 있던 톱과 망치, 전기톱까지 동원해서 그 문을 열려고 했지만 꿈쩍없이 열리지도, 잘라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벽이나 창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2층에는 거의 건물 전체를 두르고 있는 긴 창이 있었는데, 무슨 짓을 해도 부서지지 않았다. 전화도 인터넷도 먹통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인간의 재미있는 점은,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체념한다는 점이다. 여러 다양한 시도들이 실패한 후, 사람들은 마치 그 창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있는지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깥세상 사람들도 기묘하게도 아무도 우리와 이 건물, 그리고 도심에 생긴 거대한 구덩이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K는 나와 함께 쇼핑몰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K는 내가 과거에 다녔던 작은 중소기업의 직장 선배였다. 그가 먼저 이직을 했고, 나도 얼마 안 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여전히 일하던 분야는 같아서, 나는 가끔씩 그에게 크고 작은 부탁을 했었고, 그는 흔쾌히 도움을 주었다. 수년간 그를 알아왔지만, 단둘이 식사를 함께 했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밥 먹자는 이야기는 내가 먼저 했고, 장소도 내가 정했다. 이 쇼핑몰의 바로 옆에 위치한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이 쇼핑몰에서 각자 필요한 것을 사러 오자고 했다가 그 사고에 휘말린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불행의 장소로 그를 끌어들인 데 대해 끝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K는 나의 잘못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시종일관 내게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이후 벌어진 황망한 일들 속에서도 그는 서운할 정도로 예의가 있었다.



이 건물에 갇힌 사람들 중에는 가족단위가 많았다. 그들이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걸 보면서 나는 자주 외로웠다.



어느 날 밤, 나는 절망과 우울로 몸서리치며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그동안은 믿기지 않은 현실에 사고가 정지되다시피 했다. 마침내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오한에 부들부들 떨며 K를 잡고 매달렸다. 그는 말없이 나를 토닥이며 지탱해 주었다. 슬픔과 절망의 깊이를 이해한다는 듯이. 우리는 같은 재앙을 당했기에 그의 위로는 진실에서 나오는 위력이 있었다. 인간의 물리적 온기도 마찬가지였다. 불안으로 동요되었던 마음이 어느덧 잠잠해지고, 한참 그렇게 있으며 나는 잠과 깸의 경계를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꿈결에선가, 그는 갑자기 단호한 손길로 나를 힘껏 안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단단한 힘이었다. 이윽고 나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