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본 것 도전하기" -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이란 글을 쓰고 나서, 이제는 뭐든지 안 해본 것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화요일, 나의 소중한 휴일.
아침에 새벽 수영을 갔다가 필라테스 레슨까지 다녀왔다. 온몸이 상쾌했다. 점심으로는 "선지해장국"을 먹기로 했다.
평상시 고기 냄새와 식감을 선호하지 않을뿐더러 선지의 모양과 피를 굳혀 만드는 그 재료와 조리과정 때문에 선지해장국은 비호감 중의 비호감인 음식이었다. 내가 시킨 것은 선지와 함께 돼지 내장도 같이 들어있는 해장국이었다. 보글보글, 그릇에 담긴 해장국이 끓고 있다. 동시에 특유의 향으로 존재감을 사방으로 발산한다. 나는 돼지고기 냄새를 피하지 않고 깊게 흡입했다. 나중에 이 냄새를 글로 묘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역겹지만 어찌 보면 구수하게도 느껴지는 쿰쿰한 냄새. 입에 넣으면 산산이 부서지면서도 마지막엔 치아 끝에 쫀득하게 감기는 선지의 식감은 생각만큼 아주 나쁘진 않았다. 물론 좋아하는 느낌도 아니었지만.. 이게 그렇게 영양가가 많다면서? 다 먹어야지.
식당에 갔다 와서 몸에 밴 고기냄새 때문에 옷을 다 갈아입고, 머리에는 향수샤워를 했다.
그리고 또 뭘 해볼까.. 하다가 집 근처에 안마원을 가보기로 했다.
최근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계기가 있었다. 시각장애인분이 하시는 유튜브 방송이 알고리듬에 떠서 동영상 몇 개를 보았다. 또, 영화배우 박정민 씨가 시각장애인 아버지를 위한 책을 출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에 지인분이 집 근처 안마원을 추천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시각장애인분이 안마를 해주신다기에 왠지 마음이 불편해서 가보지 않았었다. 마사지를 좋아하는 편이고 주로 오일을 이용한 뷰티 마사지 경험만 있었기에 궁금하긴 했지만 용기가 없었다고 할까. 그런데 선지해장국도 남김없이 다 먹었겠다, 순간 용기가 탱천撐千했다.
안마원은 집 근처, 차로 5분 거리. 출발 전에 미리 네이버 예약을 하며 읽어본 후기들은 하나같이 믿음직스러웠다.
조용한 건물 4층에 위치한 안마원은 쏟아지는 햇빛으로 구석구석 밝았다.
여자 직원 두 분이 카운터에 계셨다. 그 중 한 분의 안내에 따라 찜질방복 같은 옷으로 환복하고 족욕하는 곳으로 가서 족욕을 했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수기안마를 아픈 곳에 집중적으로 60분 동안 받는 집중안마코스.
족욕이 끝나고 여자직원이 나를 작은 마사지 공간으로 데려갔다.
그 공간에는 마사지 베드가 1개 있었고, 안마사분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분께서 계셨다.
아픈 곳을 이야기하래서 우측 어깨와 허리를 말씀드렸다.
핸드폰을 맡기라기에 드리고, 안내에 따라 베드 위에 천장을 보고 누웠다. 안마사분께서 나를 보실 수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그분을 혼자 볼 수 있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아까 먹은 해장국 냄새가 남아 있을 텐데 불쾌하시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시각장애인 분들은 다른 감각에 예민하시다던데.
안마사님은 스몰토크와 함께 안마를 시작하셨다. 여름휴가 다녀왔냐는 질문에서 시작하셔서, 안마 자주 받냐는 질문, 민생지원금을 안마원에서도 쓸 수 있다는 말씀이 이어졌다.
최근 남해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너무 더운 날씨에 피부가 까맣게 타고 어깨엔 화상까지 입어서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안마사님이 내 팔을 들어 가까이 들여다보시더니 "하나도 안 탔는데?"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안마사님은 시각장애인이 아니신 걸까? 여기는 일부 안마사만 시각장애인이 신건가? 싶었다. 안마받는 내내 의아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시각장애인 유투버의 댓글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전맹'이신 시각장애인 분들은 거의 없으시다고 한다.
그런데..
우측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안마를 시작했는데, 안마사님은 양측 흉부 안마에 집중하셨다. 나 역시 한의사이기에 어깨움직임에 흉근이 미치는 영향을 알지만... 저는 우측이 아프다고 했고, 아니... 그것보다 지금 근육을 마사지하시는 게 맞나요?
또 막상 내가 불편한 허리는 별로 아픈 허리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중둔근을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엉덩이와 고관절부위 안마에 집중하셨다. 그런데 양쪽 엉덩이를 지날 때 손이 이상한 곳을 몇 번 스친 것 같은데 눈이 안보이셔서 그런 거겠죠?
가슴과 엉덩이 쪽에 안마의 초점을 맞추시면서 입으로는 계속 날씬하다, 예쁘다, 살이 부드럽다, 수영을 한다는데 인어 같겠다, 엉덩이를 보니(!) 수영복을 뽐내며 입을만하겠다, 이런 말씀을 하셔서 점점 내가 안마를 받는 게 맞는 건가 혼란스러워졌다. 저런 멘트만 안 하셨어도 안마에 더 집중했을 텐데..
60분은 너무나도 길었고, '삐삐빅'하는 기계음이 울리니 안마사님은 갑자기 "어?" 하시며 놀라셨다. 아직 편측 다리밖에 못하셔서 다른 쪽 다리가 남아있었다.
그러면서 예쁜 여자만 오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서비스로 좀 더 해주시겠다고 안마를 몇 분 더 하셨다. 그러다가 따뜻한 찜질로 마무리를 해주신다고 말씀하시며, 마침내 안마가 끝났다.
내가 너무 말이 없고 굳어있으니까 "혹시 죽은 거 아니죠?"라고 물으셨던 안마사님.. 저는 죽은 게 아니라 속으로 울고 있었답니다.. 이 순간 핸드폰 없이도 마음으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면서.
안마가 끝났다는 말에 그제야 꼭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죄송한데.. 제 핸드폰 좀 주실 수 있을까요?" 하며 그분의 눈을 살폈다. 눈동자의 흔들림 없는 초점이 한 군데로만 향해 있었다. 역시 시각장애인이 맞으시구나. 그럼에도 사물의 위치를 다 외우고 계신지 핸드폰이 담긴 상자를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갔다 주셨다.
이렇게 나의 첫 안마원 안마는 끝이 났다.
여자로 살면서 많은 이상한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은 '음? 이게 불쾌해야 하는 일이 맞나?' 싶은 일들이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
이번 안마사님의 안마도 그냥 안마원에서 받는 안마란 으레 그런 것 인지도 모르겠다. 선을 넘는 느낌의 멘트도, 그저 친절하고 기분 좋은 멘트를 해주고 싶으셨을 뿐일지도.
그렇지만 다시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어제 아팠던 어깨와 허리가 오늘은 더 아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