슌킨 이야기(청금초)

by 다니자키 준이치로

by Dahl Lee달리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 성스러운 날 나는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샤미센 연주가 슌킨과, 연상의 제자 사스케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부잣집 영애였던 슌킨은 어려서부터 용모의 아름다움과 음악적 재능으로 유명했다. 불운하게도 9살에 안질에 걸려 실명하게 되고, 집안의 하인(?)같은 존재였던 몇 살 연상의 사스케라는 시골뜨기 남자아이가 맹인이 된 그녀를 전담해서 돌보기 시작한다.


슌킨은 사디스트, 사스케는 마조히스트적인 면모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환상의 커플이다) 사스케, 혹은 작가 자신의 병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도. 사스케는 슌킨이 맹인이 된 후에 그녀를 처음 봤는데, 맹인이었기에 더 고귀해 보인다고 그녀를 찬양한다. 그에게는 눈을 가만히 내리깐 슌킨이 평범한 여자들보다 아름다워 보였다고 한다.(솔직히 나도 이해가 되는 미감이긴 하지만...역시나 병적이다.) 냉랭하고 차분한 그녀도 가끔은 웃었는데, 그러면 바보 같아 보여서(작중 화자의 표현에 따르면, 맹인이 웃으면 바보 같아 보인다고 한다. 현대같으면 크게 논란이 일 표현이다.)사스케는 슬펐다고... 이 책의 작가의 생몰연대는 1886~1965. 윤리의식이나 도덕관념이 현대와는 달라, 솔직하고 어떻게 보면 야만적이기도 한 표현들이 많기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슌킨은 굉장히 까칠하고 돌보기 어려운 타입의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사스케는 즐겁게 그녀를 돌본다. 나중에 슌킨은 사스케의 아이를 몇 번이나 임신하는데, 하인과 연애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수치스러워했기에 절대 그의 아이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낳은 아이들도 주변 농가에 줘버리고 찾지 않는다. 사스케 역시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아버지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는 날까지 사스케와 슌킨은 남들앞에서 스승과 제자, 혹은 주종관계를 연기한다. 둘만 있을때도 아마 그랬겠지. 두 변태들에겐 그런 관계가 주는 묘한 긴장감이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그녀는 샤미센 연주가로 이름이 높아져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하는데, 가학적인 태도로 그들을 대한다. 연주를 잘 못하면 때리고 모욕을 주는 것이다. 사스케가 어린 그녀의 첫 번째 제자가 되는데, 듬직한 남자였던 사스케는 가녀린 연하의 그녀에게 맞고 자주 울었다고 한다. 그녀의 사이코 같은 성격에도 예쁜 맹인 천재 여성에게 판타지가 있는 사람들은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녀를 그림자처럼 붙어 시중드는 사스케를 질투했다. 그중 하나가 그녀의 외모를 망치는 식으로 사스케를 벌주려 했다. 뜨거운 물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부어버려 얼굴이 다 녹아버린 것이다.(이것이 슌킨이 아닌 사스케에 대한 벌이라는 것도 참...그러나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


이야기의 변태력은 여기서부터 폭주하기 시작한다. 슌킨은 다른 사람보다는 너, 사스케가 자신의 흉한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스케 역시 자신 안의 완벽한 그녀를 훼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바늘로 자기 눈을 찔러 스스로 맹인이 된다. 자기도 맹인이 되었음을 슌킨에게 고백하자, 슌킨은 할 말을 잊는다. 숨막히는 정적...그때 사스케는 행복의 극치를 경험한다. 슌킨이 자신에게 고마워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처해서 슌킨처럼 맹인이 된 후 사스케는 더욱 행복해진다. 슌킨이 경험하는 세상이 어떤지 자신도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또 변하지 않는 완벽한 관념의 세계에 그녀를 가뒀기 때문이다. 슌킨이 연주하는 샤미센소리와 그녀의 몸의 촉감은 시각 정보가 차단되었기에 더욱 감미로워진다. (맹인이 된 사스케는 여전히 더듬더듬 슌킨의 시중을 든다. 그 어설픈 시중에, 두 맹인은 서로 지극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슌킨의 외모 역시 늙지 않고 영원히 아름답다. 슌킨이 죽고 사스케는 홀로 80세를 넘어 장수하는데, 그 기간에 사스케 속의 그녀는 더욱 완벽한 신적 존재로 거듭난다. 그는 심지어 슌킨전이라는, 그녀의 전기까지 쓴다. 이 책이, 바로 그 전기를 읽은 사람이 쓴 독후감 같은 글이라는 설정이다.



이 글에 감응하는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변태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유명한 사랑 이야기들은 모조리 어딘가 병적이고 극단적이다. 어긋나고, 죽고, 불행이 닥친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계속되는 사랑. 사람들은 사실은 다들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소설가들이 발칙한 상상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글로 누군가의 심장을 흔들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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