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지피기

by 잭 런던

by Dahl Lee달리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을 거쳐 조선을 방문했던 잭 런던은 조선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나무위키 참조)



조선인들은 어리석고 멍청하다.

조선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겁이 많다.

조선 남성들은 씩씩함이 없고 여성스럽다.

조선인들은 게으르다.

조선인들은 도벽이 있으며, 약자에게 강하다.

조선인들은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다.

조선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능률적이고 무능한 민족이다.

조선인들은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만 존재한다.


........

뭐?

이런 씨....x. 뭐 이런 개xx가 있어?



잭 런던이 '조선혐오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반감으로 그의 글을 한 번도 찾아 읽어보지 않았다.

우연히 읽게 된 <불 지피기> 역시, 그의 작품인지 모르고 읽은 후 저자가 그임을 확인했다. 명작이군 명작이야... 잭 런던 이사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역시 사람은 참 다면적이다. 작품으로 미루어 볼 때,그는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당시의 조선은 생각보다 많이 망가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잠재력을 간직한 채로.


이 글에는 잭 런던 말고도 또 하나의 비호감 작가가 등장해야 하는데 바로 이문열이다.그의 글을 어릴적엔 좋아했지만, 정치적인 견해가 생긴 후엔 의도적으로 그를 멀리했었다. 이문열의 <죽음의 미학>에는 죽음을 테마로 한 다양한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 <불 지피기>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좋았지만, 마지막이 따뜻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톨스토이 답고, 또 나의 감정의 결에 잘 맞았기에, 그래서 그만큼 덜 강렬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불 지피기>는 생명과 죽음을 다룰 때 마땅히 가져야 할 것 같은 고귀함, 연민 같은 감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이코패스가 쓴 글 같았다. 드러내놓고 잔인한 묘사는 없었지만, 상상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마치 고어물을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불 지피기>는 요약하자면, 극한의 추위에 노출된 사람이 추운 온도에 조금씩 감각을 잃어버리고, 운동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영하 50도 정도 되는 날씨에는 생존이 가능한데, 70도 정도면 생존이 어려운가 보다. 그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부주의한 실수를 하는데, 주인공에게 제대로 빙의된 독자들은 그 실수가 반복될수록 자신의 후두부에 사망플래그가 반복적으로 꽂히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질 것이다. 1) 주인공은 밖의 온도가 몇 도인지 정확히 알아보지도 않고, 2) 방한 장비(마스크)를 충분히 챙기지 않고 길을 나섰다(마스크는 중요하다!). 3) 개 한 마리와 함께. 그는 그 개를 잘 대해주지 않고 그저 도구로서 학대해 왔는데, 추위가 너무 심해지자 그 개를 죽여서 시체를 갈라 그 사이에 들어갈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미 심한 동상에 걸려 운동능력을 상실한 신체가 말을 듣지 않아 개를 죽이는데도 실패한다. 4) 추워서 불을 지피는데, 하필 눈이 많이 쌓인 나무 밑에서 지펴서 그 눈이 녹아 불을 꺼뜨려버린다(치명타!)


몸이 추워져서 말을 듣지 않아서, 그는 계속 뛰려고 한다. 뛰면 혈액순환이 되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는 이 감각을 너무너무 잘 알고 있다. 너무 추울 때는 나는 스쿼트를 하는데 그러면 금세 따뜻해진다. 이제 추워서 스쿼트를 할 때마다 불 지피기의 주인공이 생각날 것 같다.). 손과 발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그는 여전히 뛸 수 있다. 그 묘사는 덤덤하기 그지없었고, 그렇기에 더욱 징그러웠다. 손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그는 자신의 손이 어디 있는지 눈을 사용해야 알 수 있다(웩!). 마지막에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는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며 죽어간다. 죽기 직전에 느낀다는 환희의 순간일까? 그는 지금까지 자본 적 없는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어떤 고어영화보다 더 잔인하고 오래가는 잔상으로 남을 소설.

그래서 더 재미있는 소설.

이런 소설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읽은 사람이 드문 느낌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반 일리치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