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우렁각시가 산다.

내가 인생을 사는 방식.

by 이작가
"귀 대 봐,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살아."


나는 완벽한 올빼미형 인간이다. 늦게 자고 조금 늦게 일어난다.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 유명한 사람들은 새벽형 인간이다. 멋져 보였다.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일어나 진한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아무도 걷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거나, 명상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이거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새벽형 인간이 되어보는 거야."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의 결심을 공표했다. 모두의 응원 속에서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따윈 필요 없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어딘가에 1분 이상 닿아 있으면 저절로 잠이 든다. 이제 4시에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침대와 나는 물아일체가 되어 내가 침대인지 침대가 나인지 구별할 수 없다.


'음, 잘 잤다. 이제 진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어 볼까?'

하지만 느낌이 이상하다. 새벽 4시면 분명 밖은 어두워야 하는데 환하다. '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시조로도 달랠 수 없는 허탈함이다. '처음이라 그렇겠지 일주일은 시도해 봐야겠지.' 평소 일어나 던 시간에 일어나 애꿎은 남편에게 화를 낸다. " 왜, 안 깨웠어?"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본다. 알람이 울리면 끄고 흔들어 깨워도 흔들바위처럼 흔들리며 잤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흔들바위처럼 자는 사람.


남편은 새벽형 인간이다.

내가 잠자리에 들고 난 후 얼마 있다가 일어난다. 때론 내가 자는 시간에 남편은 일어나기도 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착한 어른이다. 바른생활 사나이. 난 그런 사람과 결혼한 대충 살기의 달인이다. 남편은 요리를 잘하는 아주 바람직한 사람이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저녁 식사의 80%를 남편이 준비한다.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잔을 하거나 와인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 양치만 하고 자는 경우가 생긴다.


올빼미형인 나는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다 잘 시간이 되면 그림자처럼 조용히 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금 있다 일어날 남편을 배려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2시간 후.


남편은 일어나서 그림자처럼 침대를 빠져나간다. 이제 막 잠들었을 나를 배려하는 그의 방식이다. 그때부터 남편의 일과는 시작된다. 어제저녁 먹고 난 식탁을 소리 나지 않게 치우고 설거지 거리를 접시에 음식물이 붙어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그리고 가스레인지 주변을 행주를 빨아 빡빡 문질러 닦고 또 행주를 빨아 탈탈 털어 싱크대 옆에 잘 걸어둔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그리고 아주 "야무지게" 주방을 정리하고 그의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제야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 집엔 우렁각시가 산다.

가족들이 다 자는 시간. 혼자 조용히 일어나 집안을 살핀다. 매일 새벽 가족을 살피며 뭘 해줘야 할지를 찾아내는 우리 집 우렁각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조용 움직이는 우렁각시. 내가 일어날 시간이 되면 커피를 타서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는다. 커피 향을 맡으며 기분 좋게 일어나라는 그의 배려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나는 커피 향을 맡으며 일어난다.


누군가는 나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남편이 내 로또라고도 할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네가 그만큼 잘하니까 남편도 그만큼 잘하는 거야.'라고도 할 것이다.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얼마만큼 주는지보다 그 사랑을 얼마나 많이 담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남편의 사랑을 다 받을 만한 크고, 맑고, 고요한 그릇을 준비한다. 끊임없이 주고 또 주는 샘물 같은 그의 사랑을 받아 낼 그릇을 내 안에 품었을 때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끔 나는 남편의 그릇이 차고 넘칠 것을 대비해 그에 대한 사랑을 조절하는 우렁각시 조련사다. 혹자는 여우라 칭할 것이며 또 혹자는 현부라 칭할 것이다.


#식기세척기

#여우

#새벽형인간

#올빼미형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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