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 그 질문의 대답은 네가 하여라.”
하늘에 대고 엿이라도 날려주고 싶다. 도대체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냐고 따져 묻고 싶다. 나는 왜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남들 다 사는 나이키 운동화 하나를 못 신는가. 내 마음 하나 이해 하지 못 하는 부인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직장에 나가버렸다. 나를 무능하다고 무시하는 행동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다. 딸아이는 아침부터 뭐가 문제인지 말 한마디 없이 나를 쏘아보고는 학교에 가버렸다. 혼자 남은 집이 썰렁하다.
나의 무능함이 문제다. 내가 무능해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거다. 아내가 그리고 딸아이가 그렇게 나를 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쉬는 날 같이 할 일도 없다. 스스로를 탓하기 바빠 하루하루 시간도 바쁘게 흐른다. 오후 햇살이 좋아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잠이 들었다.
이건 꿈이다. 이상한 꿈이다. 칠흑처럼 깜깜한 밤 나의 기억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흐르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어딘가를 떠다닌다. 어딘지도 모르는 깜깜한 곳을 하염없이 유영한다. 엄마품처럼 아늑하다. ‘아, 이런 엄마 뱃속이다.’ 뱃속의 나는 한 없이 평온하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아가야, 아빠야 아빠. 아빠 해봐.” 우리 아빠 목소리다. “ 당신도 참, 어떻게 아이가 아빠 해요.” 엄마다. 아빠는 엄마의 배를 문지르며 계속 아빠를 해보라고 한다. 기분이 좋다.
또다시 칠흑같이 어둡다.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일까? “ 남들 다 신는 그 운동화 하나를 못 사주는 게 마음이 아파. 그 녀석 말은 안 해도 얼마나 신고 싶었을까?” 천장을 쳐다보는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엄마를 토닥인다. “ 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뭐,” 더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아버린다. 또 어디든 날 데리고 가겠지.
벚꽃이 날리는 늦은 봄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세상 어떤 어려움도 그녀와 함께라면 다 이겨낼 것 같았다. 세상에 늘 불평하던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던 사람이다. 꽃처럼 예쁘고 좋은 향기가 나던 사람이다. 곁에 있으면 절로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언제나 내가 최고라고 말해주던 사람. 그 생기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 향기는 지금 어디로 다 증발해 버렸을까? 무표정한 얼굴로 변해버린 사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조금만 더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데 나를 또 어딘가로 이끈다. 감이 온다. 이제 딸아이에게 가겠구나.
딸아이가 세상에 처음 온 날 나는 감사 기도를 했다. 귀한 보물을 저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감사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을 울며 기도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소중한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했구나. 보석처럼 빛나는 이 소중한 아이의 빛을 내가 덮어버리려고 했구나. 손가락 발가락을 꼬물거리는 녀석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야속한 꿈은 끝내 나를 현실에 데려다 놓고 만다.
꿈에서 깬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도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는데, 왜 나는 불행한 순간들은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따뜻한 품속에서 사랑받고 자라며 부모님과 보냈던 행복한 시간, 아무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가정을 꾸려나간 순간들, 순식간에 쑥쑥 크던 딸의 미소를 보며 함께 놀았던 나날들이 모든 순간이 전부 행복이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어.” -본문 중-
소설을 밑줄 그어가며 인덱스 붙이고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두 번을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유는 읽어보면 안다. 데스틴의 사랑을 기억하며 눈물을 꾸역꾸역 삼켜가며 글을 썼다. 어린 입으로... 참 애썼어 고생했다고 어린 데스틴을 꼭 안아주고 싶다. 사랑을 기억하고 지켜내 주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데스틴 궁금하지? 그렇다면 let’s go!! 후회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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