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야, 밥 먹으러 가자!!" "보라야, 영화 보러 가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이름은 현자고 보라다. 나는 이 이름들이 참 좋다. 오랜 시간 동안 이 친구들은 그 이름과 함께 나에게 왔다. 이제는 현자를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고 보라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면 그 애틋함이 사라질 것 같다.
이름은 오랜 시간 그 주인과 함께하면서 주인과 동일시된다.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와 상관없는 배경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현자야~" "보라야~"하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이들은 나에게 의미로 다가온다.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이라는 글을 책에서 본 것 같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렇지가 않다. 장미가 아닌 다른 이름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장미가 장미가 아니라 엉겅퀴나 할미꽃의 이름으로 불렸다면 장미가 지금처럼 이렇게 예쁘지 않을 것 같다. 장미가 장미여서 정말 좋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현자가 현자이고 보라가 보라이듯이 내가 효진이 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지금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다른 이름으로 살아왔다면 그 나름의 이름에 어울리는 내가 되어있었겠지만 나는 지금 내 이름에 어울리는 나로 살고 있다. 그 어떤 예쁜 이름이라 해도 그 이름은 지금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효진이어서 참 좋다. 엄마가 “효진아”라고 부르면 명치끝에서부터 뜨끈한 무엇인가가 솟구친다.(언젠가부터는 우리 딸이라고 부르시지만) 남편이 “효진아”라고 부르면 아직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부드럽고 장난기 가득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남편의 목소리 안에 내 이름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언제나 “우리 효진이”라고 불러주시는 시댁 어른들의 사랑에 내 이름 속의 나는 밝은 빛을 쏟아내는 또 하나의 빛이 된다. 친구들이 나를 부를 때면 세상을 내려놓고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가 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린 나의 이름에 내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득 담아 부르는 내 이름 속에서 나는 꿈을 꾸고 용기를 얻고 실패를 이겨내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내 이름이 좋다. 장미가 장미로 불릴 때 장미가 되는 것처럼 나도 내가 내 이름으로 불리 울 때 더욱 나답기를 소망한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이 나로 인해 한 번 더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