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라면과 맥주

by 이작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를 보낸 나를 응원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 중요한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세상을 삼켜버릴 듯 오는 날에는 더욱.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 스스로 자처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학원에 버려진 우산 하나를 발견한다. ‘이게 웬 횡재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우산을 펼쳐 봤다. 구멍이 뽕뽕 두세 군데 나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었다.


학원 문을 닫고 터벅터벅 지친 다리를 끌며 계단을 내려온다. 좀비 영화를 찍어도 될 것 같은 비주얼과 음향 효과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 비가 오히려 시원하고 좋았다. 막혔던 속이 뻥 하고 뚫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바람이 휘익하고 불어 머리카락을 미역줄기로 만들었다. 얼굴에 축축한 미역줄기 몇 가닥이 달라붙었다. 단전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오는 짜증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구멍이 숭숭 뚫린 우산 사이를 비집고 기어이 비는 내 정수리를 때린다. 빗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내가 내지르는 소리는 이내 묻히고 만다. 우산을 받았지만 의미가 없어진다. 비와 함께 나도 하염없이 소리를 쏟아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 속의 것들을 한참을 토해내다.


비가 온다.

그리고

나는 집에 간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모든 피로가 녹아내린다. 오늘은 빗소리까지 더해져 마음이 더 촉촉해진다. 이렇게 촉촉해진 마음을 조금 더 끌어올리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냉장고를 힘차게 열어본다. ‘아니, 이럴 수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서며 안 된다. 멍하니 냉장고를 열고 바라보고 있다. 바로 그때 생각난 비책 - “생라면!”


적절한 크기로 라면을 뿌셧!! 너무 크게 하면 한 입에 들어가지 않고 너무 잘게 하면 먹기가 불편하다. 그러니 한입 크기로 적절하게 뿌시는 것은 난이도 높은 스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냄새부터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스프를 적절한 크기의 라면 위에 솔솔 뿌려준다. “이거지~~” “와그작와그작” “벌컥벌컥” 지금부터 입 안에서는 파티가 시작된다.


이때, 이가 깨지지 않게 먹는 것도 중요하다. 생라면 먹다가 이가 부러진 사람 여럿 봤다. 그러니 턱관절에 힘을 적절히 분배해서 이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생라면을 먹는 또 다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밤에 생라면 먹다 이가 부러져 응급실에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세상 어느 안주보다 맛있고 박진감 넘치며 스릴 있는 생라면. 오늘 하루쯤 msg 아낌없이 뿌려본다. 단, 혓바닥 얼얼함은 자신의 몫으로 한다.


정직하게 사는 삶을 좋아한다. 노력한 만큼 얻는 게 삶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물론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또 그럼에도 불고하고 한 번쯤은 우리 삶에도 msg를 뿌려 주고 싶다. 스프가 혓바닥에 닿았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짜릿함처럼 우리 삶에도 조금 더 강력한 무언가가 번쩍하고 뿌려져 삶에 활력을 주면 좋겠다. 나에게 주는 오늘의 msg “생라면과 맥주” 더 힘찬 내일을 위한 동기부여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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