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by 이작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방학을 했다. 오빠는 중학생인데 초등학생보다 먼저 방학을 했다고 억울해한다. 그만큼 개학날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학교 갈 때 오빠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억울함이 더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제부터 방학을 한다며 좋아한 녀석은 방학한 날은 학교에서 급식을 주지 않는다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다. 떡. 볶. 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제나 떡볶이를 외치는 녀석을 동생으로 둔 큰 녀석의 입은 대빨 나왔다.


오늘도 떡볶이를 먹고 싶은 아이는 오빠 눈치를 슬쩍 본다. 오늘은 오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안다. 날씨가 덥다며 시원한 소바를 먹겠단다. 큰아이 눈이 커졌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빛이 흔들린다. 다행히 큰 마찰 없이 메뉴를 골랐다.


아이들은 소바 나는 콩국수를 먹기로 한다. 이렇게 쉽게 메뉴가 정해질지 몰랐다. 바로 출발하면 밀리지 않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소바와 콩국수 그리고 메밀전까지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만 기다린다. 큰 녀석은 에어컨 바람이 싫다며 안쪽으로 들어가고 막내는 덥다며 에어컨 바람을 정통으로 맞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어렸을 땐 오빠밖에 모르던 오빠 바라기가 어느 때부터 오빠가 하는 말에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건다. 동생을 특별히 예뻐하던 큰 녀석도 싸울 꼬투리만 찾는 것 같다.


후루룩 후루룩. 맛있게도 먹는 녀석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애들이다. 먼저 나온 아이들의 소바 육수부터 한입. 짭짤하고 구수하고 시원하고 달큰한 살얼음 동동 육수가 입, 식도, 위까지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전율한다. 소바를 느끼고 있으니 콩국수가 나왔다. 콩국수는 보기만 해도 건강 해지는 느낌이다. 콩을 갈아 만든 국물에 채 썬 오이가 다소곳하게 올라앉았다. 일단 아무것도 넣지 않은 콩국수 국물은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숟가락으로는 감질맛이 난다. 그릇째 들고 마시는 콩국물은 머릿속까지 찌릿하게 한다. 설탕 두 스푼, 소금 1/2 스푼. 나에게 딱 좋은 간이다. 휘휘 잘 섞고 다시 한번 국물 맛을 본다. 그렇지 이 맛이지. 지금부터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면이 불기 전에 최대한 콩국수 본연의 맛을 느끼며 빠르게 흡입한다. 면들이 서로 경쟁하며 입속으로 질주한다.


시원한 점심을 먹고 밖에 나오자마자 비명이다. "날씨 진짜 덥다." 여름이니까 더운 게 당연한데 더워도 너무 덥다. 그럼에도 바로 집에 가기엔 뭔가 섭섭한 것 같아서 스타벅스에 가기로 한다. 생일에 받은 쿠폰들이 여러 개 있어서 아이들과 케이크와 음료를 마시며 방학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 언제나 딸기 음료를 시키는 딸아이, 언제나 아이스 쵸코를 시키는 큰아이 그리고 언제나 아이스커피를 시키는 나. 오늘도 우린 참 한결같다.


주문을 하고 현금 영수증까지 야무지게 챙긴다. 음료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며 큰아이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며 중심을 잡는다. 계단을 아주 멋지게 통과한 녀석. 방심은 금물이라 했거늘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힘을 잘 못 뺐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그 순간이 느리게 지나간다. 그 와중에 대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흘린 것이다. 얼음이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지고 커피가 쏟아질 때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박힌다. 지금 내 감정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는 엄마 세명, 혹시나 열심히 강의를 듣다가 자신에게 튄 것은 아닌지 살피는 학생들 두 명. 그리고 여기저기 들리는 안타까워하는 탄성. 무엇보다 당황해하는 큰아이의 표정.


세상을 살면서 누구라도 커피 한두 번쯤 쏟지 않는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소란을 피운단 말인가? 나는 이미 이 녀석들을 15년째 키우고 있는 베테랑 엄마 아닌가?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별일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빈 테이블에 쟁반을 올려놓고 직원에게 말하면 된다고 말한다. 음료를 엎은 것도 당황스럽겠지만 이 녀석은 그것보다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춘기 아들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 짐작이 간다. 나는 최대한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진짜 아무 일이 아닌 것이 맞다. 아이스커피를 다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한바탕 소란을 피워서 그런지 벌컥벌컥 아이스커피가 순식간에 반이 사라졌다.


우리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스타벅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인 즉,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고 가격이 너무 비싸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료가 자기 입맛이 아니란다. 비오 고난 뒤 새싹이 정신없이 올라오는 것처럼 스타벅스 건물이 올라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아직 남은 선물 받은 쿠폰은 남편이랑 써야겠다.


좋고 싫고 가 분명한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말하라고 키운 건 나다. 아이들의 분명한 행동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두 녀석의 감정싸움과 다른 생각들 속에서 중심을 잘 잡고 화내지 않는 것은 내가 감당할 몫이다. 앞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히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햐 할 것 같다.


개인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몸에 밴 아이들이지만 결국 사회에 나가 함께 살아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 19로 학교에 나가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혼자서 하는 일에 더 익숙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여럿이 모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투기고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배려하고 이해하며 관계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름아! 이 녀석들 잘 부탁해!!



여러분께 드리는 서비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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