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괜찮다”는 말

by 이작가


엄마는 20년 동안 식당에서 요리를 하신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시다가 모두를 위한 음식을 하신다. 그리고 지금은 동생과 함께 막국수 집을 하신다. 여름이 되면 BTS를 보는 것보다 엄마 얼굴 보기가 더 힘들다. 찾아가서 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렇게 가면 엄마는 나를 신경 쓰느라 더 정신이 없다. 가도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나올 때가 태반이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음식을 하시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에어컨 바람 쌩쌩 나오는 강의실에서 수업만 하면서도 “힘들어 죽겠네”를 입에 달고 사는 나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엄마는 괜찮아.”라며 오히려 우리가 고생이 많다고 걱정하신다.


“엄마는 괜찮아.”라는 말은 고맙고 미안하고 아픈 말이다. 자식들 걱정할까 봐 그냥 하시는 말씀인걸 알지만 야속한 딸네미는 엄마의 그 말에 위안을 받는다. 엄마가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의 괜찮다는 말이 진짜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엄마의 그 한 마디는 위로가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든든히 우리 가족을 지켜주실 것 같은 아빠가 위암 판정을 받으시고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엄마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힘들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자식이 네 명이다. 자식들을 남겨두고 급하게 가버리신 아빠를 원망할 힘도 여유도 없었다. 자식이 네 명이니까. 살림만 하며 살아오시다 마흔이 넘어 일을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세상을 탓할 수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들고 외로웠지만 무너질 수 없었다. 자식이 네 명이었다.


어미닭 품에서 네 명의 자식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제 길을 찾아 품 밖으로 나올 채비들을 했다.
엄마는 점점 야위어가고
자식들은 점점 살이 올랐다.


통통하게 살이올랐 던 자식들은 이제는 제 자식들을 품느라 야위어 가고 있다. 똑같이 “엄마는(아빠는) 괜찮아.”라는 말로 아이들을 안심시키며 품에서 자식들의 살을 찌운다. 힘들고 아파도 지쳐 쓰러져도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스프링처럼 일어난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품어야 할 자식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런 자신의 모습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서서히 차오르는 눈물은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놓은 엄마의 무게만큼 커져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눈물이 콧물이 되고 콧물이 눈물이 되어 길을 만든다.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이 서로 만나 길을 만들고 그 길에서 마주 선 엄마와 나는 아무 말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어떤 마음인지. 엄마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던 그때의 나보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이 자식들을 위로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유쾌한 사람이다.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엄마는 정말 하늘에 대고 욕하고 싶을 만큼 힘든 삶을 살았다. 엄마 말을 빌리자면 엄마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대하드마급은 될 거라고 하신다. 아마 세상 모든 엄마들의 삶이 다 그럴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나를 작가로 생각하고 있는 엄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도 엄마는 언제나 웃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지? 그렇게 의문을 품고 살면서도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엄마의 태도를 배운 것 같다. 나는 유쾌한 사람이고 엄마를 닮았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삶의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웃으면 된다. 힘든 일이 생기면 일단 그 상황에서 잠시 나를 떼어 놓는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웃는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여러 번 연습을 하다 보면 어려운 상황이 오면 숙련된 나의 뇌는 노력하지 않고 나를 그 상황에서 구출해 낸다. 한두 걸음 뒤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힘들었던 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도 연습하면 긍정적인 감정으로 조절할 수 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힘들었던 상황도 지나간다. 시간은 언제나 제 역할을 잘한다. 못 살 것 같았던 삶을 다시 살아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살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 시간의 길이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엄마들 속이 새까맣게 변해버리면 품에 안겨 있는 아이들은 안다. 엄마가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그래서 웃는다.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슬프고 아픈 나를 보고 안절부절 못 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가슴에 박히는 것보다 더 아프고 슬픈 일은 없다. 또 연습한다 - 정말 괜찮아질 수 있는 연습. 나를 상황으로부터 떼어내는 연습. 엄마처럼 나도 유쾌한 엄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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