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

by 이작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가정을 삶의 중심에 두고 무엇이든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어느 정도 나를 희생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주말의 모든 시간을 가족과 함께 했다.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좋았다. 가슴이 충만함으로 행복함으로 벅차오르기도 했다.


맞벌이였다. 여유가 있는 모든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쓴다. 캠핑을 하고 여행을 가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고 물놀이를 하고 만화 영화를 보고 자전거를 타러 간다. 이 모든 일들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의 이름으로 아이들과 함께 했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텐트를 치고 땀을 식히며 남편과 마시는 맥주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듯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을 얼려버릴 기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모든 순간들이 다 추억이 될 수 있을 만큼 특별하다. 미술관에 가면 생각지도 못한 멋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수간은 기쁨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그 모든 즐거움 속에서도 작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혼자 있고 싶다.' 결코 남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아서가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이 변해서도 아니다. 여전히 나에겐 가정이 가장 중요하고 내 삶의 중심에 있다. 함께 여행하고 노는 것이 세상에서 최고로 재미있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그냥 나로만 존재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남편이 집중하는 시간에는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 또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는 남편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남편과 시간이 겹칠 때는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아이들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했다. 그렇게 각자에 충실하다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 시간의 필요성을 외면하다 보면 삶에 대한 박탈감이 밀려온다. 그 과정이 계속되면 삶이 재미가 없고 답답해진다. 남편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고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엄마 좀 그만 불러.", "나 좀 그만 찾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모든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저기 상처 난 마음에 연고도 발라주고 "호" 불어주기도 해야 한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고 한 없는 고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충전하지 않으면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잃게 된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No"라고 말하고 나에게 "Yes"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게 된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수군거림을 집어삼켜 성장할 수 있는 양분으로 삼는다. 내 안의 자아는 무럭무럭 자랄 것이고 나는 풍성하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 행복으로 충만한 나는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다정할 수 있다. 짜증을 덜 내고 억지를 덜 부리고 주어진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시간을 함께 할 순 없지만 각자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찾고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더 강한 연대감을 느낀다.


혼자 여행하고, 산책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드라이브하고, 영화를 본다. 혼자 있는 시간, 그 자발적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내면의 살을 찌우고 지독한 일상을 즐겁게 살아낼 근육을 만든다. D라인을 자랑하는 육체로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만은 멋진 근육으로 무장된 S라인으로 산다. 같은 시간을 보낸 남편도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더 깊이 함께 할 수 있다.


쓰디쓴 세상을 언제나 달디달게 살 순 없지만 튼튼하게 살 수는 있다. 튼튼한 삶을 위해 No라고 말할 용기를 갖자.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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