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쯤 플풋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취미 생활은 나의 삶을 바꿔 놓았다. 일주일에 한 번 플룻 레슨이 있는 날이면 모든 세포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콩닥거리고 신이 났다. 악기를 맨 어깨가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이 나이에 무언가를 배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플룻이라니. 내가 악기를 선택한 게 아니라 플룻이 나를 선택해 나에게 와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룻을 입에 대고 바람을 불어 소리를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게 예쁜 소리를 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쉭쉭' 바람 빠지는 소리가 았다가 '삐익 삐익' 쇠 긁는 소리도 난다. 심지어 그런 소리마저 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을 했다. 연습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족이 없는 시간을 틈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가족이 없는 틈을 타 연습했던 걸 보면 그때는 창피함을 다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소리가 나도 가족 앞에서 신나게 연주한다.
함께 배우는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아이를 키우는 법, 디톡스 음료를 만드는 법, 시댁에서 이쁨 받는 법, 싸운 친구와 화해하는 법, 얼룩 잘 빠지게 빨래하는 법까지 플룻을 배우며 인생까지 배우고 있다.
지금은 연주를 잘 못해도 창피하지 않다. 삐익 삐익, 쉭쉭, 이상한 소리를 내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학창 시절엔 선생님께서 나에게 질문을 할까 눈도 못 마주쳤는데 이제는 선생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더 꼼꼼하게 질문하고 즐겁게 레슨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레슨을 받고 나면 이마와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목적 없이 무언가를 위해 에너지를 쏟는 일은 가족을 위한 일을 제외하고 처음 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의미가 있어야 했고, 목적이 있어야 했고, 그에 상응하는 이득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플룻을 연주하는 것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 그냥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한 행동이다. 내가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하기 위해 했던 일이 있었던가?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왔지?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인내하며 살았지만 오직 나만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 했던 것 같았다. 명품 가방을 사는 것보다 , 멋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 예쁜 옷을 사 입는 것보다 나를 더 기쁘고 즐겁게 하는 일이 바로 취미를 갖는 것이었다.
플룻을 연주하며 폐활량도 좋아지고 얼굴 표정도 밝아지고 자존감도 생겼다.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다. 쓰디쓴 에스프레소같은 삶에 달콤한 열정 한 스푼을 더 한 느낌으로 살게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관객 앞에서 연주했을 때의 떨림과 설렘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비록 훌륭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관객들 앞에서 플룻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심감도 생겼다. 플룻을 연주해 인정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고 돈을 벌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플룻을 연습하는 과정의 기쁨과 배움의 즐거움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어 좋다. 마흔, 진정한 앎의 기쁨과 플루티스트의 삶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배움에는 나이 제한도 끝도 없다. 뭔가를 배우기 딱 좋은 나이란 없다. 그저 지금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