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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26. 2021

마흔, 드라마보다 친구가 좋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삶을 살며 뭔가 즐겁고 신나는 마법 같은 일을 기다리는 여자에게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지체 없이 한 손으로 낚아챘다눈물이 그렁그렁한 개구리가 결심한 듯 말한다. “저에게 키스를 해주세요그러면 나는 박서준보다 멋진 남자가 될 수 있어요.” '어쭈? 이 개구리가 드라마를 좀 봤는데?' 여자는 하고 웃더니 얼른 개구리를 가방 속에 넣으려 했다당황한 개구리가 묻는다. “키스만 하면 근사한 남자를 가질 수 있는데 왜 키스하지 않죠?” 여자는 말한다. “내 나이쯤 되면 근사한 남자보다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개구리가 더 신나는 일이지.” 

 

 

20대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을 했다그때도 지금도 나는 남자를 얼굴만 본다남편은 그때도 지금도 근사하고 잘 생겼다보기 드물게 매너까지 장착한 여전한 나의 어린 왕자다. 우린 서로를 잘 길들여 그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고나도 그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가 된다그래서일까, 잘생긴 남자에 대한 열망은 강하지 않다마흔이 되자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삼십 대는 아이들을 키우고 일까지 하느라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날 위해 사용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이것저것 호기심도 생긴다. 이럴 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어정쩡한 나이이기도 하다. 친구가 24시간 스탠바이하고 나만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럴 때 말을 할 수 있는 개구리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친구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고 매일 통화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야기하던 친구와 조금씩 멀어진다죽고 못 사는 친구라 해도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나 삶의 환경이 달라진다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어쩌면 너무 친한 친구라서 알리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멀어지기도 한다마흔오래 함께 하지 못해 그리운 친구를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어쩌면 그 친구 역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서로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의 삶을 살아내며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아직은 자신의 삶의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길 바라지만 언젠가 그 짐을 함께 나누고 싶어 져 다시 서로를 찾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순수했던 모습을 기억하며 어제 만난 친구처럼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떨겠지.

 

 

TV를 켜면 세상 멋지고 스위트 한 남자 주인공들이 눈웃음을 치며 나를 홀린다온갖 자극적인 스토리가 내 말초신경을 건드리고 점점 수위를 높이는 전개들은 어서 오라며 나를 유혹한다마흔더 이상 치정에 솔깃하지 않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스위트 한 남자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는다 드라마보다 필요한 것은 삶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힘든 삶을 서로 응원하며 손잡아주는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산책을 하고이번엔 기필코 뱃살과 안녕을 고하자며 요가를 함께 하고소주 한 잔에 남편을 안주 삼아 편들어주고자식 낳아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며 하소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퍽퍽한 삶에 시원한 사이다 한 잔 한 느낌일 것이다.


 

 현빈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빛에 박서준의 츤데레 스윗함에 조금 아주 조금 흔들릴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선택은 친구다마흔이 되어 좋은 점은 그 감사함을 느끼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늘 옆에 있어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게 되는 나이 마흔,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화내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욕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나는 지금 세상 누구보다 부자다


우리의 우정은 느리게 자라는 나무처럼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천천히 가지를 뻗는다비가 오면 뿌리 깊숙이부터 풍성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천천히 잎을 만들고 봉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느리게 자라며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너 높이 키워낼 것이다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느리게 자라는 나무를 가꾸며 또 하나의 인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흔의 우정은 그렇다서로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함께 키워나간다그렇게 두 개의 나무는 연리지처럼 하나의 나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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