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처음 아이들 앞에 섰을 때를 기억한다. 교생 실습 때 배정받은 반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중학생이란 말이 아직 어색하고 나는 선생님이란 말이 어색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방과 후 시간이고 찾아와 말을 걸고 간식을 나눠주고 갔다. 처음 나에게 수업이 주어졌을 때 거울을 보고 몇 번이나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배울 것은...” 연습했는지 모른다. 한 달 동안 교생 실습이 끝나고 마지막 날 아이들과 나는 부둥켜안고 나라를 잃은 것처럼 울었다. 교생 실습이 끝나고 한참 동안 메일을 주고받으며 몇몇 아이들과 소식을 나눴지만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하는 나 그리고 학업에 바빠진 아이들은 조금씩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아직도 그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은 생생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때 생각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온 힘을 다해 공부하며 임용 시험을 준비했지만 교단에 설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힘든 시간 속에서 내린 결론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꼭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긴 방황의 끝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시작. 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학원은 학교와 달랐다.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학원에서는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간다. 아이들은 시간별로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선생님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밀물과 썰물 같은 아이들을 마주하느라 서로를 만날 시간이 없다. 가끔 아이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친하게 지내던 녀석들도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인사도 하지 않고 다른 학원으로 옮겨갔다. 여러 번 상처 받고 나니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기도 했다. 텅 빈 껍데기를 들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외사랑이면 어떤가.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됐다. 수업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명언을 들려주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좋았던 부분을 칠판 한편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녀석들이 어느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칠판에 적어 놓은 문구를 노트에 적는 아이들도 생기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내 주위로 모여들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엄마와 싸운 일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비록 학교에 임용되진 않았지만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직업병. 정말 무서운 병이다. 그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몸에 습득된 무서운 습관이다.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언젠가부터 모든 일을 설명하려 들고 이해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려 한다. 언제나 말에는 핵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강조해야 한다. 말을 통해 뭔가 교훈을 줘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생긴 것 같다. 돈을 내고 배우러 온 아이들에게 뭐라도 더 알려줘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 그랬는지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어서 그랬는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아이들 통해 한 것인지 지금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하는 말에는 의미가 포함되어야 하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적인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습관이 집에서도 발현된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학원 아이들을 대하듯 하는 것이다. 한 번은 남편이 “너랑 이야기하면 맨날 혼나는 것 같아서 싫어. 남편이 아니라 아이 대하듯 명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라고 말하는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잠을 못 잔 것 같다.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나는 엄마가 아니라 훈화 길게 하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마릴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공작부인처럼 교훈을 좋아했고, 아이를 키울 때는 무슨 말에나 교훈을 덧붙여야 하나고 굳게 믿었다.”
-인디고 112p-
<빨강머리 앤> 책을 읽으며 가슴 한쪽이 ‘턱’하고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마릴라도 그랬구나. 마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마릴라도 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이다. 교훈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 아이들이 바르고 정직하게 잘 자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차피 앤은 마릴라의 말은 한쪽 귀로 흘리고 자신만의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고 우리 아이들 또한 시작이야 어떠했든 끝없는 내 잔소리에 지쳤을 텐데.
어떤 것이든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 말도 그렇다. 듣기 좋은 말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뭔가를 주입시키려 한다면 뭔가를 잘 해내기 전에 질식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삶이 꼭 교훈적이고 원칙적일 필요는 없다. 살다 보니 규격에 맞는 삶보다 조금 모자라기도 하고 틀에서 벗어나기도 한 삶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것 같다. 어떤 일에서 꼭 배울 점을 찾고 교훈을 찾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삶이 그렇게 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좋은 말을 찾고 교훈적인 말로 수업을 끝내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말을 좀 섞기도 한다. 그게 더 어색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진짜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나가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정해진 수업시간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양질의 수업과 좋은 말이다. 그래서 난 좋을 글귀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천방지축 빨강머리 앤이 더 바르고 더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마릴라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꼰대를 자처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아, 꿈에는 정해진 틀이 없단다.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여행에도 정답은 없고 너희들의 삶이 꼭 교훈적일 필요도 없고. 다만 어른으로서 선생님은 해줄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야. 그렇게라도 너희들에게 삶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야. 너희들 마음속에 작은 씨앗들이 자라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