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런 생각이 약간 들긴 했어요.
꽃을 꺾어서 아름다운 생명을 빨리 사라지게 해선 안 된다고요.
제가 사과 꽃이었대도 꺾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전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어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유혹을 느낄 때 아주머니는 어떻게 하세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유혹을 느낄 때 나는 가끔 그 유혹에 넘어가는 편이다. 때론 유혹을 느꼈을 때 고민하는 척 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건 내 삶에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야 유혹에 넘어간 나에게 스스로 조금 덜 미안하니까. 어느 땐 그런 유혹들이 반갑기까지 할 때도 있다. 유혹에 넘어가고 나면 달콤한 행복에 취한 세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조금 더 그 즐거움을 누리고 싶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성적 자아가 말한다. ‘적당히 해야지. 이건 아니지.’ 정신을 차리고 나면 자괴감이 몰려오지만 이젠 그 후회의 순간이 짧게 지나가도록 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래서 나는 크지 않은 유혹이라면 그냥 모른 척 눈감아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둔다.
마지막 남은 초콜릿을 입에 넣어버리고 싶은 유혹, 30분만 더 자고 싶은 유혹, 자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싶은 유혹, 늘어난 체중계의 숫자를 무시해버리고 싶은 유혹, 잠든 남편을 귀찮게 해서 깨우고 싶은 유혹, 마지막 남은 맛있는 반찬을 먹어버리고 싶은 유혹, 하기 싫은 일을 못 들을 척 피하고 싶은 유혹, 내려야 할 정저장을 지나쳐 어디라도 가버리고 싶은 유혹, 이성 말고 감정에 따르고 싶은 유혹..
새로운 아침을 마주한 순간부터 나는 유혹에 빠진다. ‘따뜻한 이불속에 조금만 더 너를 뉘어 봐. 오늘 하루 하지 않는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아. 조금만 더 자. 조금만 더 뒹굴거려.’ 순간순간 찾아오는 크고 작은 유혹을 잘 이겨내기도 하고 정복당하기도 하고 때론 정복당한 척하며 유혹을 즐기기도 한다. 매일 똑깥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면 가끔씩 자신의 유혹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쓰디쓴 삶에 달콤한 마카롱 한 입이 호사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요즘 나는 모든 순간 유혹에 빠져 살고 있다.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더 잔다. 아침은 먹지 않기로 했는데 더 많이 먹는다. 매일 글을 쓰기로 했는데 노트북을 모른 척 무시한다. 책도 읽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둔다. 먹고 싶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 자고 싶으면 참지 않고 잔다. 하루에 10시간을 잘 때도 있다. 해야 할 일을 일부러 못 본 척한다. 좋아하는 캠핑 유튜브도 죄책감 없이 몇 개씩 본다. 한 캔씩만 마시던 맥주를 두 캔도 마신다. 긴장하고 지켜내려 애쓰며 산 2021년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순간순간의 유혹에 정복당한다. Cheating Day라고 하면 될까? 먹고 싶었던 것도 참고, 더 자고 싶었던 것도 참고, 쉬고 싶었던 것도 참으며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주는 상이라고 해두자. 또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내야 할 나에게 주는 미끼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 모든 순간의 선택은 내가 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나다. 그 순간들을 후회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되돌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기에 지금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버텨온 내 존재의 의미를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 유혹에 일부러 빠진다. 그렇게 하라도 존재하고 싶었던 나를 위로하고 이해해주기 위해 스스로 유혹을 만들어내고 그 유혹에 모른 척 넘어간다. 참아내느라 이겨내느라 달콤한 유혹을 견뎌 내느라 애쓴 나에게 주는 cheating day을 힘껏 누린다.
“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유혹이 찾아왔을 때 가끔은 그 유혹에 즐거이 빠져주는 것도 삶을 즐겁게 사는 방법인 것 같아. 사과꽃도 분명 너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 행복했을 거야. 삶은 정해진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니까. 어쩌면 즐거운 유혹에 한 번쯤 빠져보는 것이 너의 삶을 더 반짝거리게 할 수도 있어.”
요즘 살고 있는 내 삶을 변호하기 위해 앤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적극적으로 유혹에 빠져 그 유혹을 즐기고 있는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글일 수도 있다. 목적이야 어찌 되었건 글을 쓰며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 건 오랜만이다. 그래일까? 선택적 유혹에 빠지는 나, 쫌 멋진 것 같다. 에잇, 오늘은 생크림 잔뜩 얹은 카페 라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