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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나를 비난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by 이작가

“너 요즘 무슨 고민 있니? 오늘따라 얼굴에 주름이 더 자글자글하다.”

알고 있다. 내 얼굴에 주름의 수가 늘어나고 깊이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주변에는 그런 점을 꼭 집어내는 사람이 있다. 귀신같이 알고는 그 아픈 곳을 기어이 휘젓는다. 몰랐으면 하는 일들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놓고는 자신은 뒤끝이 없다고 말한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그런 상대방에게 화도 못 낸다. 너무 쿨하게 아픈 곳을 찔러대는 그 사람은 뒤끝이 없다는 방패 뒤로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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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스로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아주 달라요.

그 사실을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았으면
하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앤이 초록 지붕 집에서 살게 된 후 린드 부인이 찾아온다. 부인은 앤을 보자마자 “확실히 얼굴을 보고 결정한 건 아니로군요. 깡마르고 못생긴 아이로군요. 세상에, 주근깨가 어쩜 이렇게 많니? 머리는 당근같이 빨갛잖아!”라고 말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화가 났을 것이다. 나처럼 주변의 눈치를 보고 소심한 사람이라면 오롯이 다친 마음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고 회복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다행히 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제삼자의 입자에서는 “그걸 참았어? 너는 더 심하게 말해주지 그랬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 되면 쉽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집에 와서 괜히 설거지하며 그릇에 화풀이를 하거나 잠자리에 누워 이불 킥을 날리기도 한다. ‘아, 나도 한 마디 했어야 하는데.’하면서 후회한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것을 잘하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른이 이야기하면 무조건 듣고 참아야 했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배웠다. 어른들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감정을 드러냈을 땐 엄한 훈계가 뒤따랐다.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 앤처럼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삼켜버리는 나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이라면 변명일 수도 있다.



내 아이들은 나처럼 이불 킥을 날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받았던 교육과 같은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 어른이 자각을 하고 바꾸려고 노력을 해야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어른과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진짜 예의는 상대방이 누구든 존중해주는 것이다. 자신보다 어리다고 해서, 자신이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을 때, 상대방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더 무례하고 어른답지 못하다. ‘이 나이에 내가 살아온 방식을 어떻게 바꿔?’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방어 기제를 가동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숨기고 사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신을 위축시키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살아왔을 테니까.


자신의 기분을 제대로 알고 표현할 수 있어야 상대방의 상태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어떤 기분이 될지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감정이 상했다고 어른에게 소리를 지르고 대드는 행위를 한 앤의 행동은 분명 잘 못 되었다. 하지만 그전에 앤에게 하면 안 될 소리를 한 것은 분명 린드 부인 잘 못이다. 마릴라는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어른답게 문제를 해결한다. 린드 부인에게 앤에게 그렇게 상처되는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대로 교육받지 않아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하는 앤에게도 잘못을 분명히 알려주고 린드 부인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마릴라와 같은 어른들이 많아져야 한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누구에게도 외모를 비하받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아무리 가난하고, 엄마 아빠가 없는 고아여도, 약하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즐겁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그리고 자신을 삶을 누군가가 부정하고 비난하도록 내버려 둬서도 안 된다.


“야, 니 얼굴에 주름아 자글자글하다.”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 상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매일 아침 명상을 하고, 걷고 또 걸어도,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마음 수련을 해도 사정없이 마음을 휘젓고 들어오는 가시 돋친 말은 잔잔한 마음에 점점 큰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덜 상하는 연습만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소리에 내 감정이 얼마나 상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즘 팩 하고 있는데 많이 티나? 나도 알고는 있었는데 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좀 상하다. 다음부터는 내 감정도 생각하면서 말하면 안 될까?”


자신이 직설적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네가 이해 해.’라는 식의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더 직설적으로 말을 해야 한다. 뒤끝이 없는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 장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릴라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에게 무례하지 않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앤, 솔직히 네가 린드 부인에게 “아주머니 같은 사람은 싫어요. 싫어. 싫어. 정말 싫어!”라고 했을 때 조금 통쾌했어. 마릴라에게 혼날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속이다 시원했다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그렇지 못했던 적이 많았어. 이제 너에게 “용기”를 배웠고 마릴라에게 “지혜”를 배웠으니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그리고 린드 부인과 같은 어른은 되지 않게 노력해야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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