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빵 아니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것이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다. 편의점마다 포켓몬 빵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줄을 서도 살 수 없으니 축 처진 어깨로 편의점 문을 나온다. 딸아이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아직도 집에서는 앵두라는 태명으로 불릴 만큼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아이 같아 교복을 입고 나서는 모습이 아직 어색하다. 뭐가 유행인지 관심이 없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 할 정도로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아이 었다.
그런 딸아이가 "아빠, 나도 포켓몬빵 먹고 싶어." 처음 하는 딸아이의 부탁에 남편은 대장의 명령을 받은 병사처럼 눈빛이 변했다. 어떻게 해서든 딸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딸아이의 부탁이 떠올라 편의점에 들를 때면 혹시나 해서 "포켓몬 빵 있나요?"라고 물어본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편의점에서는 언제나 같은 답이 돌아온다. "어떻게 알고 빵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와서 빵을 사가요. 우리 아들 가져다주고 싶어도 못 갖다 줘요."
핑클빵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이효리, 옥주현, 성유리, 이진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그다지 맛도 없었던 빵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스티커의 대상은 바뀌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그게 뭐라고 그것을 갖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쓴다.
상술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또 속아 넘어간다. 홈쇼핑을 보다가도 관심도 없던 물건이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하면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한다. 그 물건을 꼭 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구할 수 없는 것에 더욱 열광하고 더 애를 태우는 것 같다.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헛웃음만 나온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몸은 저도 모르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편의점을 기웃거린다.
어디 그게 포켓몬빵뿐이겠는가. 지금 애타게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또는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시선 따위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걱정 따위 두려움과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품절인 걸 알면서도 딸아이의 부탁에 온 동네 편의점을 다 찾아다녀 구한 포켓몬빵을 사들고 개선장군처럼 나타난 남편은 기뻐할 딸아이를 생각하며 들뜬 목소리로 애타게 앵두를 찾는다.
"앵두야, 아빠 왔어. 아빠가 뭐 가져왔는지 봐!"
"아빠, 이거 어디서 구했어? 아빠 짱!"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 신이 난 남편에게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이미 편의점 할머니와는 안면을 텄다. 다음에는 꼭 포켓몬빵을 남겨 놓는다고 약속도 했단다.
처음엔 뭐 그런 걸 모으냐며 나무랐지만 포켓몬 스티커에 대한 아빠와 딸의 추억을 방해하는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은 스티커가 10개나 된다. 도대체 얼마나 모으려는 생각인지 스티커를 넣어 보관하는 스티커북을 샀다. 아무래도 아빠는 우리 동네 모든 편의점 사장님과 안면을 틀 수 있을 것 같다.
"포켓몬빵 현상"을 보며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사회생활에서도 너무 다 주면 안 될 것 같다. 약간 부족하게 주고 조금 튕겨야 할 것 같다. 좋으면 다 줘버리는 나 같은 사람이 좀 배워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혹시, 포켓몬빵 있어요?" 기뻐할 아이를 생각하며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갈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