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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왜”라고 묻고 “느낌”이라고 쓰게 하라.

by 이작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행복하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언제나 내 삶의 화두는 “행복”이었다. 고등학교 때 싸이월드 대문 메시지가 “나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을 산다.”였다. 오글거려 손이 퍼지지 않는 말이지만 그때도 지금도 행복을 갈망하는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 없었다. 그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목적만 있었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악바리처럼 바득바득 나아가지만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고 만다. 내 삶인데 그리고 이렇게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내 삶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거지? 지금 난 어디쯤에 와 있지? 지금 나는 진짜 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내가 맞나? 나는 어딜 향해 나아가야 할까? 수도 없는 물음들을 답을 찾기 위해 읽고 쓰는 삶을 산다.


은유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직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니 님.”을 말했다.


글쓰기는 아픔이나 슬픔, 괴로움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한다. 상처를 없는 것처럼 잠깐 덮어두고 마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 드러내는 일이다. 그 순간은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런 과정들이 켜켜이 쌓여 더욱 단단한 정신을 만들고 진짜 행복이라 느낄 수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은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에.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쓰고 또 쓴다.


도저히 글이 써시지 않는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쓰려고 노력하며 버텨낸 시간 시간들.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보잘것 없이 쌓여만 가는 글들.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는 자존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는 힘.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마음에 근육이 붙고 정신에 살이 찐다.


니체는 말했다. “ 고통은 해석이다. 우리는 고통 그 자체를 앓는 것이 아니라 해석된 고통을 앓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고통을 내 언어로 해석하고 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판단 기준으로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해석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방향대로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에 따라 누군가의 기대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할 때가 많다. 글쓰기는 자신의 언어로 자기 삶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치다. 조금 더 자신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통로가 된다.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더 많이 읽고 싶게 하는 책, 더 잘 쓰고 싶게 하는 책, 그리고 그 길은 나에게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시간들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다시 꺼내 읽은 책이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절로 얻어지는 좋은 것은 없기에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을 가려고 한다. 읽고 쓰는 삶. 다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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