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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Oct 12. 2020

요리해주는 딸 1

첫 번째 요리 - 비 오는 소리를 품은 김치볶음밥

우리 엄마는 시집와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빠는 막내아들이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소설로 10권은 된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신다. 우리 시어머님도 홀어머니에 외아들인 시아버님께 시집을 오셔서 많이 힘드셨다고 한다. 우리 어머님도 엄마와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자신이 살아온 것을 드라마로 쓰면 대박날거라고 하신다. 엄마는 시집가면 고생한다고 나에게 어떤 집안일도 시키지 않았고, 시어머님은 자신이 한 고생을 며느리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늘 앉아서 쉬라고 하신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요리와 친해질 기회를 놓지고 만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 점심, 저녁을 집에서 먹어야 한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이지만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큰아이는 등교하고, 작은아이가 아침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아침을 자기가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스스로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딸아이는 손끝이 야무지다.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어떤 음식을 할지 기대가 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재료를 살피는 녀석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잘라놓은 김치와 먹다 남은 스팸을 꺼내 들었다. 김치볶음밥을 만들려나 보다.  


초초초 간단 재료

잘게 썬 김치 적당히
스팸 먹다 남은 만큼
달걀 2개
올리브 오일



먼저 올리브 오일에 김치와 스팸을 넣고 열심히 볶는다. 느낌 아니까. 느낌 있게 달달달 볶아준다. 가끔씩 툭툭 튀는 고춧가루에 “아뜨거워” 호들갑을 떠는 아이가 귀엽기만 하다. 아이는 뜨겁지만 참는다. 그리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즐기기 시작한다. 멋지다!!


밥까지 넣고 골고루 잘 섞어준다. 그리고 예쁘게 얹을 달걀 프라이도 준비한다. 달걀 껍데기를 잘 못 깼었는데 지금은 한 번에 탁~하고 잘도 깬다. 껍질도 떨어지지 않게 잘했다. 비 오는 소리 비슷한 소리가 난다. 아이가 요리하는 모습을 저만치서 바라보니 흐뭇하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대견하다. 아니 이렇게 키워낸 내가 더 대견하다.


밥을 볶으며 뜨거웠는지 불 조절도 한다. 나보다 낫다. 요리 못 하는 사람은 센 불에 요리해 다 타기만 한다는데 내가 딱 그랬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달랐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불 조절을 하며 밥을 볶는 녀석에게서 빛이 난다. 웍질을 한다고 손잡이를 들고 언젠가 본 것을 따라 한다. 요리사를 시켜야 할까? 고슴도치 엄마 모드 ON!!



정성껏 담아서 계란까지 올려놓으니 제법 그럴듯하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를 것 같았는데 막상 보니 침이 고인다. 달걀과 잘 섞어서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감탄사는 사람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저 그런 맛에도 “와~ 정말 맛있다. 대박!!”이라는 감탄사를 반찬으로 삼으면 그 맛은 배가 되고 요리한 사람의 기분 또한 배가 되는 것 같다. 요리를 못하고 해준 요리를 먹기만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감탄사를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는 것이 살아가는 기술이 될 수 있다.


나중에 고생할 거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했던 엄마
언제나 앉아서 쉬라는 시어머니
“엄마, 내가 해줄게 편하게 있어.”라는 딸아이



행복은 늘 가까이에서 이렇게 손짓하고 있다. 내가 바로 행복이라고 그러니 좀 봐달라고. 오늘 딸아이의 김치볶음밥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들었다. 엄마가 오늘을 얼마나 가슴 벅차게 살고 있는지 이 녀석은 알까?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서로 닮은 엄마, 시어머니, 나, 그리고 딸아이. 우리는 큰 사랑으로 서로 맺어져 하나가 되어간다. 그것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일지도 모른다.


#김치볶음밥

#요리

#첫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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