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요리 - 이렇게 해도 된장찌개가 된다고?
“엄마, 요리가 재밌어.”
김치볶음밥을 완성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 세례를 받으니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오늘 아침에도 요리를 해보겠다고 나선다. 어제 내가 꿈을 잘 꿨나? 벌써부터 딸이 챙겨주는 밥을 먹다니.
“엄마, 내가 요리하니까
흰쌀만 들어간 밥 할 거야.”
흰쌀밥이든 잡곡밥이든 따질 입장은 아니므로
알아서 하라고 선심 쓰듯 허락했다.
어디 이게 선심을 쓰고 말고 할 문제인가?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아침밥을 차려 준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도 매의 눈을 하고 냉장고 문을 연다. “엄마 할머니가 따 주신 호박 이랑 두부 넣고 된장찌개 끓일까?” 어제처럼 간간한 요리를 할 줄 알았는데 된장찌개를 끓인단다. 나도 많이 해 본 적이 없는 요리다. 과연 잘 끓일 수 있을까? ‘어떻게 끓이든지 맛있게 먹어줘야지’ 하는 각오로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격려했다.
집에 있는 재료
할머니가 주신 집된장
육수팩 ( 코로나 때문에 준 야채 꾸러미에 들어있었던.)
호박을 썰었으나 상해서 사용 못 함.
팽이 버섯한 봉지
찌개용 두부 작은 것.
곱창 시켜 먹고 남은 매운 고추와 슬라이스 마늘 조금
1. 뚝배기에 육수 팩을 넣고 끓인다.
2. 각 종 재료를 보기 좋게 자른다.
(이미 잘라져 있는 재료는 그대로 사용한다.)
얼마 없는 재료를 정말 정성껏 씻고 자른다. 두부를 툭툭 망설임 없이 자르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과연 저 아이는 나의 딸이 맞는 것일까? 어쩌다 내가 저런 아이를 낳았단 말인가? 버섯을 좋아하는 아이는 ‘버섯을 조금 남길까’ 고민하다가 한 봉지를 다 넣기로 결심한다. 그 선택 또한 주저함이 없다. 뺏고 싶다 그 카리스마.
육수가 보글보글 끓는다. 아~ 그 정겨운 소리다. 찌개가 끓을 때 내는 보글보글 소리는 음원으로 내야 한다. 잠들기 좋은 ASMR로 특허를 내도 될 것 같다. 조금 더 그 소리를 듣고 싶지만 이젠 육수가 진정 자신을 빛나게 해 줄 친구들을 영접할 시간이다. 이 녀석들이 얼마나 조화롭게 어울리느냐에 따라 오늘 우리 아이의 “첫 번째 된장찌개” 맛이 좌우된다. ‘어떻게, 떨려~’
4. 뚝배기가 뜨거우니 조심해서 육수 팩을 건진다.
5. 육수에 준비해 놓은 재료와 된장을 넣어준다.
6. “기다려~ 기다릴 줄 알아야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아이의 갑작스러운 제안!!
-엄마, 된장찌개만 먹을 수 없으니까 김치 볶음도 하자!
-김치 볶음을 할 수 있겠어?
-응. 김치 냉장고에 김치 꺼내올게.
-그래. 그럼 김치 볶음도 해봐. 그런데 엄마는 참치가 들어가야 더 맛있던데.
참치도 넣어서 해주라
-알았어.
김치 참치 볶음 재료
김치냉장고에서 막 꺼낸 아삭아삭 묵은 김치
요즘 미스터 트롯으로 유명한 그분 이름이 찍힌 ‘바로 그 참치’ 한 캔
올리브 오일 조금
백종원 셰프가 울고 갈 설탕 두 꼬집
김치 냉장고에서 막 꺼낸 김치는 그냥 먹어도 “얼마나 맛있게요~” 아이가 김치를 자르는데 옆에 서서 묵은 김치 머리 부분을 손으로 집어 아삭아삭 먹으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김치를 썰고 참치를 준비하면 김치 참치 볶음 준비 완료. 드디어 볶는건가?
된장찌개가 옆에서 보글보글 열심히 끓고 있는 동안, 잘 익은 김치와 기름기 좔좔 참치를 넣고 최대한 참지가 뭉개지지 않게 볶아야 한다며 살살 조심조심 스냅을 사용해 볶는다. 참치 기름에 김치가 볶아지는 냄새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한쪽에서는 보글보글 끓고, 한쪽에서는 지글지글 볶는다. 환상의 하모니다. 식사 때나 야심한 밤에 이 글을 읽는다면, 일단 사과부터 할게요. “ 배고픔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한 번에 하나를 하기도 힘든데 가스를 두 개 켜 놓고 요리하는 신공을 발휘하는 잠재된 요리사가 우리 집에 산다. “유레카”,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의 요리를 하면서도 내일 뭘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며 진정한 고수의 길을 걸으려 시동을 걸고 있다. 요리계는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호박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하는데 호박이 자신이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전사해 찌개에 호박을 못 넣은 게 가장 아쉽다. 찐 호박잎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올리고 그위에 강된장을 크게 한 술 떠 올려 입이 터질 듯 크게 쌈을 싸서 먹으면 그만한 별미가 없다. 된장으로 무친 고추도 맛있고, 시래기 된장국도 맛있고, 된장에 고추장 섞어 만든 쌈장도 맛있다. 된장으로 만든 모든 음식은 몸도 건강하게 하지만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아차차, 이런 감성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보글보글 찌개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이는 김치볶음을 먹을 만큼 접시에 예쁘게 담고 남은 것은 통에 넣어 보관한다. 알뜰한 살림꾼이다. 세상에~ 김치볶음 위에 깨소금까지 뿌려주는 센스!!
플레이팅까지 완벽한 그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된장찌개가 꿀맛이다. 어떻게 음식이 꿀맛일 수 있느냐며 따져왔던 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꿀맛”이 맞다.인성문제 있냐고 물어도 어쩔 수 없다. 정말 꿀맛이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잘 먹는 기술은 결코 하찮은 기술이 아니며,
그로 인한 기쁨은 작은 기쁨이 아니다.
-몽테뉴-
배가 고프면 그냥 아무거나 먹고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는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도구라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 음식의 진정한 맛도 모르면서 그냥 내 몸의 에너지를 위해 채워 넣는 연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음식 하는 과정을 즐기고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어보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 작은 천사는 음식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두부를 툭툭 썰듯이 망설임 없이 바꿔 놓았다. 세상사는 방법을 아이에게서 배우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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