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독립서점 - 소양 <플리커> ; 주말 단풍여행 추천
가을. 하늘은 높고 바람은 살랑살랑 일교차가 큰 날씨. 울긋불긋 온 세상이 예쁜 옷을 갈아입는 시간. 나의 가슴이 울렁인다. 언제나 자연은 그 시절에 맞춰 할 일을 다 해놓고 우릴 맞이하는 마음씨 좋은 오랜 친구 같다. 책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올해는 일교차가 심해 단풍이 더 예쁘게 들고 있다는 가을을 제대로 느끼며 책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함께 가보자.
우리가 방문할 독립서점 가는 길에 “송광사”가 있어 잠깐 들렀다 갔다. 푸른 하늘과 울긋불긋 단풍이 그리고 돌탑과 돌담이 정겹다. 아직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녀석은 조금 더 지금을 유지하고 싶어 안간힘을 쓴다. 다음 주쯤이면 저 녀석들도 옷을 갈아입겠지. 자연은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자신의 할 일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해내고 있다. 가벼운 나의 행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빨리 독립 서점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 송광사를 보는 둥 마는 둥 휘~익 둘러보고 목적지로 발길을 옮긴다.
책은 가장 조용하고 변함없는 벗이다.
책은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가장 현명한 상담자이자,
가장 인내심 있는 교사다.
-찰스 W. 엘리엇-
독립서점 <플리커>로 향하는 입구부터 공기가 다르다. 담벼락 틈으로 핀 꽃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 귀퉁이에 피었던 이름도 알 수 없는 꽃과 비슷한 것도 같아 더 아련하다. 햇살을 듬뿍 받아 찬란하다 못해 스스로 빛을 내는 광원처럼 눈이 부시다.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걷다 보면 오매불망 가고 싶었던 서점을 마주한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점으로 들어선다.
잠깐, 서점에 입성하기 전에 전경 좀 더 구경하고 가자. 바로 들어가기엔 주변이 너무 예쁘다. 마음 같아선 깊이깊이 숨겨두고 나 혼자만 몰래 꺼내 보고 싶은 곳이다. 따스한 햇살을 받은 고택의 숨결이 나의 숨과 만나 하나가 되는 시간이 참 좋았다. 깊은숨을 들이쉬며 먼지 하나의 숨결까지 다 내 것으로 만들고, 깊은숨을 내쉬며 내 안의 근심 걱정들을 다 내어 놓았다. 서점에 들어서기 전에 이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 큰 깨달음을 얻기 전 치르는 의식 같다.
서점에 들어가기 위해 몇 개의 계단을 오른다. 그 계단은 마치 천국의 계단처럼 발걸음이 가볍고 가슴이 설렌다. 이런 자연환경 속에 둘러 싸인 서점 안에서 책을 읽는 다면 글자 하나하나가 세포 하나하나와 만나 춤을 추며 온 몸을 돌고돌아 마음 안에 씨앗이 되어 뿌리내릴 것 같다. 이 느낌 아니까. 충만한 느낌 가득 안고 설레는 걸음을 내딛어 서점 안으로 들어선다.
햇살 가득 머금은 책방. 이 한 장을 위해 모두가 책방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정말 이 순간이 왔다. 너무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내 영혼까지 깨끗하게 표백해줄 것 같다. 내가 방문하기 전날 “이화자”작가님의 북 토크가 있었다. 이 멋진 책방을 찾는데 모든 운을 다 썼나 보다. 일찍 알았다면 북 토크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지기님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했으니 앞으로는 책방에 오기 전에 이벤트를 확인해야겠다. 인스타 : @flicker_dubhe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음악과 미술 세계”, “커피를 내리는 것은 마음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날에 시를 읽는다”, “나의 고백이 되어주는 당신의 문장들” 네 개의 큼직한 흐름 안에 자리한 책들이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듬직하다.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책들은 오랜 친구들과 어울려 하나가 된 것 같다. 센스 있는 큐레이션이 돋보인다.
중앙에 자리 잡은 책들은 요즘 핫한 책들이다. 모두 한 아름 안아 우리 집으로 모셔오고 싶다. 지금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도대체 어떤 책을 고른단 말인가. 헴릿이 다시 살아나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한다고 한들 내 고민과 그 깊이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병률 시인의 시집을 사느냐 박주경 앵커의 책을 사느냐’ 수백 번의 고민 끝에 나는 초록의 박주경 아나운서의 책을 선택했다. 선택한 책이 어떤 치유의 말을 건네 올지 벌써부터 지칠 줄 모르는 나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박지성의 두 개의 심장 못지않을 내 책에 대한 열정의 심장은 멈추지 않는다.
책을 구입해 창가 책상에 앉는다. 야무진 마음으로 책을 폈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줄 읽고 밖을 쳐다보고, 한 문단 읽고 햇빛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햇살을 느끼며 그 한 문장을 마음에 담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또 이겨낼 것입니다.” 박주경 작가님이 건네는 이 위로의 문장이 가슴 깊이 울림을 준다. 무슨 일이든 이겨낼 것 같고,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을 것 같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나를 다시 서게 한다.
<플리커> 옆으로 50미터쯤에 <두레 카페>가 있다. 규모는 작지만 원주의 <뮤지엄 산>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책방에 들러 충분히 책을 즐겼다면, 카페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껴도 좋을 것 같다. 사진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장소들이 천지 삐까리다. 고개만 돌리면 느낄 수 있는 이 소중한 선물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살아있다면 존재하기 때문에,
죽었다면 부재하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 권한 밖의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면면을
온전히 느끼며 사는 것이다.
-몽테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느낄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그것들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과거의 것을 탓할 것도, 없고 미래의 것을 미리 걱정할 것도 없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히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무소의 뿔처럼 흔들리지 말고 마음 안에서 느끼는 것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살자. 조금만 눈을 돌리면 느낄 수 있는 자연을 느끼고, 여러 가지 핑계로 밀어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고 한 문장을 가슴 깊이 느껴보자. 자신의 풍성한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집은 책으로 가득 채우고
정원은 꽃으로 가득 채우라.
-앤드류 랭-
<플리커> 서점은 자연을 닮았다. 자연 속에 있을 때 서점의 의미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계절의 <플리커>를 담고 싶다. <플리커>는 자연과 책을 하나로 묶어 책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해주는 가을의 산타클로스 같다. 하야 눈이 소복이 쌓인 <플리커>를 상상하며 겨울을 기다려 보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