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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나에게 말을 걸 때 4

말하는 여자, 듣지 않는 남자.

by 이작가

수영이와 태석이는 6년을 만났고 2년 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주위에서 모두 반대했지만 수영이는 태석이가 좋았다. 2년 전 헤어지기로 한 것도 수영이가 홧김에 한 말 때문이었다. 태석이는 무덤덤하게 그러자고 했다. 같은 과 친구였던 둘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둘은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야기할 때 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도 손가락으로 똑똑 소리는 내는 습관도 여전했다. 여전히 당근을 먹지 않았고 담배는 끊었다고 한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웃는 태석을 보고 수영이의 심장이 다시 한번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둘은 다시 만나기로 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는지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유난스럽게 사랑을 했다. 어디서나 손을 잡고 다녔고 음식도 먹여주고 시간이 날 때마다 문자도 주고받으며 영원할 것 같은 순간순간을 보냈다.


수영이는 태석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아이처럼 더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태석이는 여전히 친구들과 술을 좋아한다. 언제나 그랬다. 둘만의 데이트는 손에 꼽는다. 늘 친구들과 함께 만났고 술자리로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수영이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수영이는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끔뻑끔뻑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태석에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더 큰 소리고 말을 해도 태석은 듣지 못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대꾸하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수영은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봐달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좀 들어 달라고 했더니 친구들과 함께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한다. 태석이와 수영이의 연애 방식은 2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는 여자 그리고 여자의 말을 허공으로 밀어내는 남자. 다시 시작한 이들의 사랑은 유지될 수 있을까?




매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릴라는 공연히
자기 입만 아팠구나 싶어 화가 났죠.

말대꾸를 하지 않는 남자만큼
불쾌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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