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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나에게 말을 걸 때 3

그럼에도 Carpe Diem!!

by 이작가
“전 밖에 나갈 용기가 없어요.
어차피 이 집에 있지 못할 거라면
초록색 지붕의 집을 좋아하게 돼봐야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밖에 나가서
저 나무와 꽃과 개울과 잘 알게 된다면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거예요.

지금도 괴로운데 더 이상 괴로워지고 싶지 않아요.
밖에 나가고 싶어 좀이 쑤시지만요. 여기저기서

‘앤, 앤, 나한테로 와요.
앤, 앤, 우리 같이 놀 친구가 필요해요’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 같지만요.

하지만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런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갈 처지라면
차라리 좋아하지 않는 게 좋아요.”


흩날리던 진눈깨비 같던 눈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세상을 감싸 안는다. ‘차라리 눈을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차리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소영이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어디를 향할지 몰라 가득 고여 있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중력의 힘을 따른다. 하얀 눈이 내리니 더 마음이 아팠다.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소영이는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한다. 좋아하는 책을 정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좋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도서관 봉사는 이미 모집이 끝났다. 이곳저곳을 검색하다가 유기견 보호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소영이 눈이 반짝였다. 다행히 아직 자리가 남아 있다.


토요일 오후 소영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봉사활동 갈 준비를 한다. 버스를 타고 20 분 거리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흥얼거린다. 겨울바람과 햇살이 버스에서 내린 소영이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봉사활동에 가서 좋아하는 강아지를 실컷 안아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볍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졸랐지만 언제나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만큼은 있는 힘껏 강아지들과 놀아주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한다.


소영이가 도착한 유기견 보호소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겨울인데도 냄새가 공기를 밀쳐내고 소영이에게 쓰나미처럼 깊게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으~윽' 하고 소리를 냈다. 실례인 것 같아 얼른 입을 막으며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소영이가 할 일은 강아지들 목욕시키는 것과 산책시키는 것이다. 소영이는 봉사가 처음이고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어린 강아지들을 돌보는 일을 배정받았다. 마음껏 안아줄 요량으로 왔지만 냄새도 나고 지저분한 강아지를 힘껏 안아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조그만 강아지를 왜 키우다 버렸을까? 강아지들은 서로 예쁨을 받으려고 소영이에게 와서 꼬리를 흔들고 몸을 비벼댔다. 다섯 마리를 씻기고 나니 허리를 펼 수가 없다. 어른들이 앉았다 일어나며 "아구구구"하는 소리를 왜 내는지 알 것 같다.


소영이가 씻긴 강아지들 중 유독 하얗고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다. 눈은 또 왜 그렇게 까만지 소영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소영이는 그만 그 강아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털이 흰 눈처럼 하얗고 뽀송 거려서 겨울이라는 이름도 지어 불렀다. 목욕을 시키고 산책을 시키는 동안에도 소영이에게는 겨울이만 눈에 들어왔다. 토끼처럼 뛰는 것도, 왕왕 짓는 것도, 꼬리를 요리조리 흔드는 것도 너무 사랑스럽다. 인생의 짝꿍을 만난 기분이다. 봉사활동이라는 것도 잠시 잊고 겨울이 와 신나게 뛰어놀았다.


산책이 끝났다.

봉사활동 시간을 다 채운 소영이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겨울이는 소영이를 보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 댄다. 소영이와 겨울이 사이에는 펜스가 쳐져 있다. 겨울이가 끙끙댄다. 소영이 마음이 흔들린다. 쪼그리고 앉아 겨울이를 들어 올렸다. 겨울이와 눈이 마주쳤다.


봉사활동에서 돌아와 소영이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겨울이 입양하게 해 주라. 내가 다 할게. 똥도 치우고 밥도 주고 산책도 시키고. 내가 다 할게. 제발 키우게 해 줘." 엄마가 반응이 없자, 아빠에게 달려간다. "아빠. 겨울이 키우게 해 주세요. 네? 제발요. 아빠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가 알아서 다 키울게요. 제발요. 네?"


"그때 겨울이 눈을 보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야. 흑흑흑. 제발, 키우게 해 주세요." 소영이는 온 힘을 다해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소영이는 침대 위에서 겨울이와 함께 별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다. 좋아하게 될 것을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소영이는 지금 겨울이와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영 : 앤, 그냥 나가서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개울에 발도 담가 봐.

앤 :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서 초록색 지붕의 집을 기억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

소영 : 그래도 상상하며 그리워할 대상이 생기는 거잖아.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느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 앤.

앤 : 다시 외로워질 것이 두려워, 소영아.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 가득 안고 고아원에 돌아가면 이런 것들을 몰랐을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소영 : 그렇겠구나. 하지만 앤, 앞으로 맞을 두려움 때문에 지금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다시 문을 열고 나가서 꽃과 나무와 개울을 느껴 봐.

앤 : 그래, 맞아. 소영아, 나에게 용기를 줘서 고마워. 내일은 또 내일의 걱정거리가 있겠지 지금부터 내일을 걱정할 필요 없는 거야. 당장 나가야겠어. 그러면 초록 지붕의 집을 사랑하게 되겠지. 그래서 다시 고아원에 가게 되면 더 많이 그리울 거야. 그렇다고 해도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어. 고마워, 소영아.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멈춰서 있다면 힘껏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을 후회하게 될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면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즐거운 경험을 하고 난 다음의 나는 그것을 알기 전 나와 분명 다를 것이다. 절대 앞으로 일어날 일이 두려워 걱정하며 주저했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가라.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그리워해라.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거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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