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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양이의 탄생

너무 많은 눈치를 보는 것에 대하여

by 개양이 CATOG

그림은 솔직하다, 누구에게도 선뜻할 수 없는 은밀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담을 수 있다. 까다롭고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의 초상을 이렇게 제한 없이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있을까 싶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판단 하지도 통제하지도 않는 무한한 영역의 캔버스에 말로 다듬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화폭에 담아내다 보면 그 감정의 살 체가 오롯이 드러나곤 한다.


사실 이 그림은 정체성이 굳건히 성립되지 않았던 나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오랫동안 앓아오던 우울증에 대한 표현이기도 했다. 왜 나는 끊임없이 열심히 노력하지만 개의 집단에도, 고양이의 집단에도, 어느 집단에서도 소속되고 진심으로 환영받는 듯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가. 왜 나는 마음속에서 개와 고양이가 항상 싸우고 있는 느낌을 받는가. 공을 물어 주인에게 가져올지 공을 물어 혼자 놀지 본성에 기반을 둔 결정을 또 미뤄둔 채 개의 마음과 고양이의 마음은 오늘도 싸우고 있었다. 이제 입에 문 공도 바닥에 내려놓은 채...


2010년 한국에서 이 그림을 그렸을 때부터 종종 이런 질문들을 받았다. '왜 애완동물인 개와 고양이로 작가의 자화상을 표현하니? 왜 애완동물이 아닌 좀 더 자유로운 객체로 예술가의 자화상을 표현할 수도 있지 않니?''왜 형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게 표현하니?'라고... 내 대답은 이러하다. 그 당시 나는 정신적으로 전혀 자유롭지 않았기에, 나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숨기는 일이 더 익숙했기에 이보다 사실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실, 개와 고양이는 야생동물의 후손이다. 고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양이는 호랑이의, 개는 늑대의 후손이라고 한다. 어느 날 인간을 만나며 그들의 야생성은 퇴화하고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 마음은 야생의 본성을 잃고 주인인 인간에게 동화되어 그들이 던진 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정체성 혼란이 가득한 개양이일 뿐이었다.


사회와의 과정에서 같은 행동도 어느 집단에서는 칭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질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몸으로 눈치로 배워가는 나는 필요 이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모든 이들에게 질책을 받고 싶지 않은 욕구, 인정의 욕구가 너무 간절했었던 듯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미움받아도 괜찮다는 '용기'가 없었다. 종종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 길을 잃은 마음의 표현. 개양이는 나의 솔직한 성장통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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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sie Jihyun Lee, 개 vs 고양이 (Cat vs Dog), Acrylic on canvas, 91cm x 116.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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