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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 명상, 평온 속 불안

역설적인 마음

by 개양이 CATOG



<2012년, 작가노트>

현대인은 피로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우리들은 시간을 분 단위, 초 단위로 나누어 가며 일상을 바쁘게 보내는 행위를 미덕으로 여기며 성과를 내기 위해 마치 경주마처럼 앞 만 보고 달려간다. 미디어 매체는 우리들의 누적피로를 가중시킨다. 굳이 궁금하지 않아도 소파에 앉아 TV를 틀면, 신문을 넘기면, SNS를 통하면 세계 각지의 소식을 엄청난 양의 정보로 써 흡수하게 된다. 이렇게 미디어 이미지는 종종 실제 사건보다 강력하게 현대인의 뇌리에 스며들어 그들의 부산한 삶을 더욱 시끄럽고 불행하게 만들곤 한다.


쏟아지는 정보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작가로서 사건을 바라볼 때 ‘떨어져 보기’라는 새로운 시각적 창을 제안하고자 한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재난의 현장, 기름 유출 사건 이후 파란 하늘이라는 평화가 찾아왔으며 재난의 파편 더미 속에서 사람들은 내일의 희망을 찾고자 한다. 불운한 사건들의 잔재는 남아있지만 그 속에서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색적인 시각의 창을 통해 감정의 해결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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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은 어렵다. 그리고 괴롭다. 그리고 너무 깊은 고민이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에게 매몰되어 앞으로 나갈 방향성을 찾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개도 아닌, 고양이도 아닌 그런 혼란스러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켜 나의 시선을 현재 나를 둘러싼 다른 현상을 어떻게 소화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돌리기로 한다. 이전 그림이 현재의 내 마음을 마주하여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면, 이 시리즈는 내가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안 그리고 공포'의 감정을 해결하려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매스미디어가 공급하는 끊임없는 정보들이 꽤나 불편하고 피곤했다. 그래서 가지고 이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맑게 개인 하늘과 함께 다시 평화가 찾아오듯, 끊임없이 수렁으로 빠져드는듯한 이 무겁고 불쾌한 감정이 극에 달한 후 견디기가 괴로워졌을 때, 그 극의 감정에서 바로 다음 찰나에 느끼는 역설적으로 평온한 감정이 찾아온다. 그림을 통해 그 불안의 실체를 오롯이 드러내고 다시 시각적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내 안의 정리되지 못한 그 무언가를 해결하고자 했었던 듯하다.


작품의 이미지로 차용된 것은 그 당시 끊임없이 보도되었던 일본의 쓰나미 사건 현장 이미지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왜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 작가에게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직접 재난을 경험한 일이 있는데 이 매스미디어 이미지를 통해 그 불안한 감정이 다시 증폭되는 느낌을 받고 그것이 굉장히 불편하다.'라는 대답을 했다. 초등학생 시절, 꽤 오래된 동네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잦은 누전으로 화재를 목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우리 집 역시 화재를 당한 기억이 있는데, 일층 전체가 건물 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탔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유치원에서 받은 소방교육 덕분에 수건을 물에 적셔 입과 코를 막고 단 둘이 있었던 세 살배기 동생과 함께 탈출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7살 무렵, 버스에 치여서 교통사고에 당한일도 있었다. 다행이 몸살로 끝날 정도의 타박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당시 주위 어른들은 재빠르고 의연하게 이런 사건들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듯이 보였던 나를 칭찬해주셨고, 스스로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특정 이미지 보도 자료로 인해 불편해지는 나를 발견했을때, 이 현상의 정당성에 대해 스스로 설득하기도 어려웠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 이야기를 작품 비평 시간에 공유했을 때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 현장인데 일본과 아무 상관없는 작가와 작품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피드백을 받았고,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식하게 되었다. 이 일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 꽤 벅찬 사건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괜찮지 않은것이 당연하다. 완벽하게 괜찮다고 생각하는것이 문제다.


화재를 멀리서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생존을 위협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집이 탔다는 것은 어린 시절 꽤나 큰 생존의 공포로 작용했을 것이다. 교통사고 역시 마찬가지로 생존에 위협을 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사건을 연상시키는매스미디어의 수많은 이미지의 자극들은 그 달갑지 않았던 감정경험을 비슷하게 재경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공감받지 못했던 이 감정을 마침내 인식하게 되었을 때,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원망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 아무 이유 없는 힘듦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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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2012년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아시아프(ASYAF)에 당선되었다.


Jessie Jihyun Lee, 매스미디어 명상-평온 속 불안 1 (Massmedia Meditation-Anxiety in Peace1), Acrylic on canvas, 130.3cm x 162.2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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