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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 명상, 평온 속 불안-공감을 잘해도 피곤해

공감 피로를 겪는 사람을 위한 글

by 개양이 CAT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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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매스미디어 명상 4 (Massmedia Meditation-Anxiety in Peace4), Acrylic on canvas, 72.7cm x 60.6cm x , 2012


공감 피로를 겪는 사람을 위한 글. 공감은 엄청난 호의라고!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 혹은 Empathy Fatigue)는 다른 사람을 돕는 직업(상담자, 경찰과 소방관, 의사와 간호사 등)을 가진 서비스 분야의 사람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들’을 돌보며 겪는 증상으로 ‘열정 피로‘라고 부른다. 공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감정적, 신체적으로 지친 상태를 일컫는다. 직업군으로 남을 돕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돌봐야 할 상황에 오래 노출된 사람일 경우, 공감 피로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직업군이 아닌 인간관계에서 누군가를 돌봐야 할 상황에 계속 노출되어있을 때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왜? 그 관계에서 마치 그 사람이 마치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처럼 여겨지는 상황 때문이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나는 '공감 피로'를 겪었던 것 같다. 돌봄을 받아 마땅한 상황에서 감정적인 돌봄을 하는 행위에 매우 지쳐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괜찮은 줄만 알았던 나의 감정이 올라왔다.


‘왜 그때 나를 지켜주지 않았어?’


‘나 너무 무서웠단 말이야.’


하는 솔직한 감정 말이다.


스스로 '나는 괜찮아, 다 할 수 있어.'라고 되뇌고 그 감정을 묻어버리면 다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힘든 마음을 억누르면 미움이 되고 그 미움을 억누르면 분노가 되며 그것을 누르면 누를수록 그 폭발력이 커져버린다.


그때는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성장하면서 온 몸이 폭발해버릴 것 같은 그런 감정들을 겪게 되었다. 나도 힘에 부치는데 자꾸 나한테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아우성치는 다른 이들의 마음들이 너무 힘들어서 도움을 주지 않았을 때 나는 '나쁜 사람'이 돼버리고 억울한 감정이 쌓였다. 호의가 꼭 물질적인 선의 이지는 않다. 감정적으로 돌보는 것 역시 커다란 호의이다. 감정적 돌봄은 그 형체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착취의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영화'부당거래'의 명대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감정적 호의가 반복되어 어느새 나는'호구'가 되어있었다. 그 '호의'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책임'으로 바뀌고, 나는 지지 않아도 될 책임 때문에 어느샌가 질타를 받고 있었다. 사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나만 겪어서 억울해'라는 감정이라기보다. 과도하게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공감을 해주느라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내 마음도 좀 알아주세요’라고 호소하고픈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그날에 대한 해석

마음공부와 마음 연습을 꾸준히 하면서 내린 나의 해석은 이렇다. 그때 그들이 내가 하찮아서 내 놀란 마음을 돌보아주지 않았던 게 아니라고, 그저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가 아직 버거운 상황이었으니, 그들 나름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었겠구나,라고...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해본다.

그렇게 상황을 이해해보고 나면 나의 억울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감정만이 오롯이 남게 된다. 이제 스스로 내가 내 마음을 충분히 알아주어야 한다. 그 당시 나의 '보살핌 받고 싶은 욕구'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내 마음을 알아주자, 의외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힘든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다른 일들에 이미 힘이 부친 상태일 수 있다. 당장 내일 먹을 밥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면, 그 마음을 알아줄만한 마음의 공간이 충분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은 그저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의 이러한 고민은 절대 사치가 될 수 없다. 미쳐 돌볼 겨를이 없었던 마음을 이제 들여다볼 상황이 된 것뿐이다. 이 고민은 너무나 당연하고 나의 미움과 분노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과거 세대가 전쟁에서의 회복, 경제 성장에 목표를 두고 성장했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 격변의 시기를 견딘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에 관심을 둘 시기가 온 것뿐이다.


다른 이를 돌보느라 나의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힘든 마음’은 정당하다. 당신의 ‘분노’도 정당하다. ‘당신의 고민은 한낮 사치가 아니다.’


가장 첫 번째 할 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로부터, 힘든 기억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기 그리고 나 자신의 감정적 필요를 너무 억누르지 말고 그대로 인정해주기.


<공감에 맞서다(Against Empathy)>를 쓴 폴 블룸(Paul Bloom)은 책에서 이런 조언을 했다.

“모든 사람을 돕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생각을 버리세요.”


오랫동안 나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꿨던 것 같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전에 나는 나를 먼저 도울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는 내가 괜찮을 만큼만 돕기.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어색해하지 말고 기꺼히, 감사히 받아보자.


쓰러진 내 마음은 쓰러진 마음대로, 꺼내어 바라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내 마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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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지현, 매스미디어 명상 5 (Massmedia Meditation-Anxiety in Peace4), Acrylic on canvas, 60.6cm x 72.7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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