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그램 Jun 25. 2023

복숭아가 머무는 계절

내가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


또, 여름이 왔습니다.


전 세계에서도 덥기로 소문난 대한민국의 여름, 습도와 온도가 정점을 찍으면 불쾌지수도 정점을 찍어 불호도 많은 이 계절을 저는 해마다 기쁜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여름은 저에게 여러 가지로 반가운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사계절 중 알레르기가 가장 덜한 계절이라는 겁니다.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비염, 입술 건조증 등으로 항히스타민제나 보습제 같은 보조제를 챙겨야 하는, 쓸데없이 예민한 몸뚱이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여름이 되면 습도가 높아서인지 미세먼지나 꽃가루가 덜해서 알러지 반응이 확실히 줄어들어요.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이 조금 상쇄되는 혜택을 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맛있는 여름 과일들의 향연입니다.

예전에는 과일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누가 따로 챙겨주면 고마운 그런 존재였습니다. 과일은 내가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엄마가 챙겨주시거나 명절에 선물 받아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나이에 해를 더해 갈수록 좋아하는 과일이 생기고 먹고 싶고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과일군들이 대체로 여름에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해마다 여름을 자연스레 기다리게 됩니다.     




저는 새콤한 맛보다 달콤한 맛을 좋아해요. 귤보다는 감, 사과보다는 배, 캠벨포도보다는 머루 포도, 파인애플보다는 멜론이 제 취향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멜론이지만 멜론만큼이나 사랑하는 과일은 바로 복숭아입니다. 복숭아는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 중 하나지요. 초여름부터 늦여름까지 맛과 향, 식감이 모두 다른 여러 종류의 복숭아를 즐길 수 있는 기쁨이 가득한 계절입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건 6월 초순부터 만날 수 있는 천도복숭아입니다. 저는 신맛이 강한 천도복숭아보다 6월 중순에 짧게 맛볼 수 있는 신비 복숭아를 더 좋아해요. 겉은 천도복숭아를 닮아 매끈하고 안은 백도를 닮아 달콤한 과즙에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랍니다. 올해도 신비 복숭아를 놓치지 않고 챙겨 먹었습니다. 신비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면 이제 복숭아의 계절이 시작되는 걸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복숭아도 종류가 참 많습니다. 일단 색깔로 크게 구분되는 백도와 황도, 그다음엔 식감으로 구분이 되지요. 말랑 복숭아, 딱딱 복숭아는 말복, 딱복으로 불리며 짜장 vs 짬뽕만큼이나 취향이 갈립니다.   

   

저는 말복파입니다. 충분히 후숙 시킨 백도의 껍데기를 손톱으로 살짝 생채기를 내고 슬슬 벗겨 크게 한입 베어 물면 복숭아 과즙이 콰르르하고 입안으로 쏟아집니다. 부드러운 식감 사이로 복숭아의 섬유질이 느껴지는데 그 서걱거림, 입안에서 착 으깨지는 그 식감을 참말로 좋아합니다. 혼자 백도를 해치울 때는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양 볼이 빵빵하도록 와구와구 먹습니다. 복숭아 과즙이 여기저기 흘러내려도 상관없습니다. 말랑 복숭아는 그렇게 먹으면 훨씬 더 맛있거든요.


혼자서 두세 개쯤 먹어 치우고 나면 세상 부러운 것 없이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말랑한 복숭아를 혼자 배부르게 먹는 시간은 애쓴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입니다.      


말랑 복숭아를 살 때는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후숙 하는 시간 동안 적당한 때를 맞춰 가장 맛있을 타이밍을 알아채는 기민함과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자르는 동안 무른 과육이 으스러지지 않도록 신중하고 섬세한 칼질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한 사람당 한 개만 먹어도 5개를 깎아야 하니 기민함과 섬세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근성과 평정심도 필요하지요. 복숭아 좀 먹겠다고 유난일 수 있는지만 말랑 복숭아는 그런 유난을 떨어도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과일이거든요.      



하지만 아이들 셋을 키우는 엄마가 된 후로는 주로 딱복을 구매하게 됩니다. 바쁜 일상에 말랑한 복숭아를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먹기 좋게 손질하기, 먹고 난 뒤 여기저기 흘린 과즙을 닦아주고 정리하는 그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후숙을 덜 하면 달콤이 덜하고 후숙이 완벽하면 손질해서 내어주기가 사납습니다. 게다가 말복은 타이밍을 놓치면 금세 물러지고 맛도 변하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에요.      


그에 반해 딱복은 보관 기간도 말복보다 더 길고 아이들이 먹기 좋게 미리 잘라두어도 쉽게 물러지지 않으니 엄마라는 역할 안에서는 딱복이 딱 맞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말랑 복숭아를 훨씬 더 좋아하지만, 아이들 간식거리로 손쉽게 다듬을 수 있는 건 딱딱 복숭아더라고요.


잘 익은 복숭아의 껍데기를 얇게 벗겨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밀폐용기에 한가득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어요. 삼 남매가 오물오물, 복숭아 먹는 모습을 보면 제 맘속에도 복숭아 향이 납니다.





말복이든 딱복이든 어떤 이유든 복숭아는 무조건 옳습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참 기분 좋은 여름 과일입니다. 생긴 것부터 복스럽고요. 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까요. 올해도 저는 복숭아 제철 지도를 스마트폰에 저장해 두고 가장 맛있는 복숭아를 기다려봅니다. 곧 7월이니 대옥계 그레이트와 용택골드가 나오겠네요.      


온 집안에 달달한 복숭아 향이 가득해질 이 계절을 함께 만끽해 볼까요?


작가의 이전글 월요일을 좋아하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