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비싼 네 단어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들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영국의 투자가 존 템플턴은 이 말을 세상에서 가장 비싼 네 단어로 꼽았다. 자기 능력을 과신한 투자자는 객관적 상황을 살피는 데 서툴다. 주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다르다’며 대단한 기회라도 잡은 것처럼 위험한 투자를 감행한다. 그 결과 많은 돈을 잃게 된다. 실상은, 이전이나 이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툰 투자자 외에 비싼 네 단어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 우리네 정치인들이다. 최근 LH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이 네 단어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얼마 전 시민단체 폭로로 LH 직원 13명이 미공개 내부 자료를 이용해 3기 신도지 예정지의 땅을 매입한 정황이 드러난 뒤였다.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해당 직원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과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언론 취재 결과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의혹의 대상이 된 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번엔 다르다’며 항변에 나선 모양새다. 노후 준비, 지인 권유, ‘아내가 한 일’ 등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결론은 LH 직원들과 달리 기회를 노려 한탕해보려 한 투기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오롯이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국민의 대리인들이 가장 비싼 네 단어를 남발하는 동안 그 값을 치르는 건 국민들이다. 정치인들의 잇단 비리 의혹은 정치 혐오 현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정치 혐오는 국민 삶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정치와 멀어질수록 정치인들이 눈치 보지 않고 비리를 일삼을 토양이 만들어진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삶은 팍팍해진다.
국가 기관 가운데 가장 낮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오늘날 국회는 저절로 탄생한 게 아니다. ‘이번엔 다르다’며 권한은 맘껏 누리고 책임은 방기하는 후진적 정치 문화가 초래한 비극이다. 작금의 상황을 방지하고자 오래전부터 구상된 이해충돌방지법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책임 없는 권한이 당연시된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이번엔 다르다’며 무모한 투자에 뛰어든 투자자는 투자에 실패한 책임을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우리의 정치 문화도 응당 그래야 한다. 책임은 권한에 비례해야 한다. 이해충돌방지법 도입은 후진적 정치 문화의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 총량제도 실시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