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84] 뿌리

- 갈등의 정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관리

by leesy

뿌리내리지 못한 민족은 고난과 시련에 시달린다. 디아스포라의 원조격인 유대인이 그러했고, 오늘날 미얀마에서 추방당한 로힝야족과 IS 박멸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서방의 모르쇠로 고통받는 쿠르드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뿌리내릴 곳이 있다고 모두가 만족한 삶을 살지는 못한다.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새로 뿌리내릴 곳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토양이 다르면 뿌리도 쉽게 자리잡지 못한다. 타향에서 겪는 차별과 멸시의 시선은 뿌리를 새로 내리기 위한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그렇게 새로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아 떠난 한국인이 가장 많은 곳은 미국이다.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떠난 한인들의 이민 러시는 80년대 절정에 달했다.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분투한 이들이다.


이는 비단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메이플라워호엔 새로 뿌리내릴 곳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이들이 타고 있었다. 이후로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와 멕시코,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이민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문화의 용광로를 자처한 미국은 새로 뿌리내리기에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여겨지곤 했다. 그들의 노력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가 용광로 속에 녹아들었던 것은 아니다. 상이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이들이 한데 모이니 갈등은 불가피한 요소였다.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에 대한 미국 내 차별은 이민의 역사만큼이나 유서가 깊다. 인구의 65-70%가 백인인 백인 중심사회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갈등이 필연적이라면, 갈등의 정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관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도의 관리를 실패한 사례가 연달아 터지고 있다. 지난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아시아계 여성 6명을 포함한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 의심이 드는 사건이었다. 아시아계 사람들은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동양인 대상 혐오 범죄가 급증했다고 말한다. 묻지 마 폭행은 마치 데일리 이벤트인냥 발생하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개된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아시아계 혐오 규탄 시위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미국 정부는 인종 간 갈등의 정도를 관리하는 데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숱한 인종 차별적 발언을 일삼으며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한 바 있다. 미국의 동력은 새로 뿌리내리기 위한 이들의 근면성실함이었다. 문화의 용광로는 지금 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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