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는 언제나 회색지대에 있으니
어제(29일) 서울 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간 첫 토론회가 있었다. 본방송을 사수하지 못해 방송사가 유튜브에 올린 재방송을 봐야 했다. 토론 내내 두 기성 정치인의 노련함이 묻어났다. 티키타카 중 말 끊기와 실언으로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더러 있었지만, 토론회 밖 유세 상황에 비하면 비교적 매끄럽고 심심한 토론이었다.
내가 놀란 건 토론회가 끝난 뒤였다. 영상에 달린 댓글들은 특정 후보가 월등히 우세했다며 다투고 있었다. 어떤 이는 토론을 본 사람이라면 누가가 압승했는지 알 수 있다는 식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신승은 있을지언정 압승을 거둔 후보는 고를 수 없었다. 굳이 선택을 강요한다면야 유권자의 한 명으로서 내심이 지지하는 후보를 고를 테지만, 그마저도 신승이지 압승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은 어떤 기준으로 압도적 승패를 가름한 걸까. 후보자 발언의 진실성 여부도 주요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댓글 다수는 자잘한 말실수를 지적하고 있을 뿐, 정작 내용을 다투는 댓글은 보기 힘들었다. 십수 년의 정치 경력을 가진 두 후보는 자신을 향한 의혹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으니 말이다.
극과 극으로 양분된 댓글을 보고 있자니 우리 정치의 현실이 떠오른다. 제 눈에 대들보는 애써 무시하면서도 남의 눈에 티끌은 빠짐없이 지적하는 빈곤한 문화가 만연한 곳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 사고방식 하에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인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건전한 토론과 합의가 실종된 건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그 양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정치적 극단화의 이유로 SNS를 든다. 이용자가 선호하는 내용과 성향의 게시물만 보여주는 SNS의 알고리즘이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편향되게 만든다는 진단이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정치인들은 타협과 양보 대신 기존 입장만을 고수하거나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SNS를 운영하는 테크 기업들에 정치적 책임을 묻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SNS의 알고리즘에 내재된 문제를 지적하는 일 외에도 할 일이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그 의무란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을 뜻한다. 흑과 백의 세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노력이 의무 이행의 출발점이다. 진리는 언제나 회색지대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