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93] 말

- 현상 유지를 반기는 건현재의 삶이 편한 이들뿐

by leesy

교통ㆍ통신의 발달로 방언이 사라지고 있다. 지리적 분화로 생겨난 방언은 지역 간 이동이 일상화되고 미디어가 보편화된 결과로 서서히 특색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방언도 태어나는 양상이다. 정치적 분화가 새로운 사회적 방언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방언은 지리적 방언보다 훨씬 이질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정치적 극단화와 확증편향의 심화는 세계적 추세로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적으로 분화된 이들은 같은 한국어를 사용해도 소통에 극심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들 사이의 불통은 함경도 사투리와 제주도 방언 간의 간극을 넘어선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의 방언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데 있다.


우리 사회가 채택한 민주주의란 시스템은 말하기와 듣기가 기본 작동 원리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욕망을 이해하고, 접점을 탐색하는 과정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은 각자가 말하기에만 바쁘다. 타인의 말을 듣지 않으니 욕망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 결과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떼쓰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온갖 멸칭을 붙이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사이 지리적 방언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심리적 방언이 증가하고 있다. 정치적 분화에서 시작된 새로운 방언의 탄생은 점차 세대ㆍ계층ㆍ성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점증하고 있는 탓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드러난 세대와 성별 간 투표 성향의 차이는 이 같은 심리적 거리감을 드러내는 결과일 수 있다.


방언이 늘어나는 걸 반기는 이들은 정치인들이다. 분열을 틈타 지지도를 높이는 건 이 땅의 위정자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관습이다. 마치 대영제국이 ‘나눠서 통치한다’를 식민지 경영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싸우고 멀어질수록 어떤 정치인들은 밝은 미래를 꿈꿀지 모른다. 신흥 미디어와 언론은 분열의 장작을 끊임없이 공급한다. 이들이 할 일은 사람들 간 거대한 공통분모는 외면한 채 티끌만 한 차이점을 부각해 이해관계를 다투게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 간 소통이 끊기면 민주주의는 작동을 멈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현상 유지를 반기는 건 언제나 현재의 삶이 편한 이들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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