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94] 사이

- 쉽게 ‘신뢰’라는 귀한 자원을 건네지 않아야 한다

by leesy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엘베시우스는 모든 인간이 이해관계의 노예라고 말한다. 다들 공리(公利)를 외치면서도, 내심 사리(私利)를 좇기 때문이다. 비정한 저주처럼 들리지만 민주주의 체제의 견제와 감시 기능은 이 같은 인식 하에서 작동한다. 선두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이들도 실제론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


사회적 불신을 조장한다고 비판해도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언행이 일치해 공리만을 위해 행동한다면, 우리 사회를 감시하는 각종 기능들은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예컨대 민주주의 시스템의 대전제인 삼권분립이 그러하다. 우리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를 기억하고 있다. 공적 기관들이 사리 추구에 몰두하던 야만의 시대였다. 그 때문에 우리가 지금 삼권분립을 금과옥조로 여기게 된 셈이다.


물론 사리에서 완전히 해탈한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을 ‘성인’이라 부른다. 이들은 언행이 일치해 공리를 우선하며, 공리를 위해 행동한다. 인류 역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리를 외치는 목소리 뒤에 숨은 사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신뢰’라는 귀한 자원을 건네지 않아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공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공직자들일 테다. 입법ㆍ사법ㆍ행정부에 소속된 이들로 공리 추구를 목적으로 공적 자원(세금)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자주 공적 자원이 사리를 위해 남용되는 일들을 목격해왔다. 삼권분립은 사리 추구의 욕망 아래 유기적으로 통합되곤 했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불법적 부동산 투기에 몰두하고, 국회의원들은 이해충돌원칙을 밥 먹듯 져버리며, 판사들은 승진을 위해 재판을 조작한다. 공리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에서 사리를 추구한 탓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러한 자들의 주장 또한 대동소이하다. 문제가 없다거나, 문제가 될 줄 몰랐거나. 이미 이해관계의 노예가 된 이들은 사리 추구에 공적 자원을 쓰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을 맡긴 사람들이 할 일은 언제나 같다. 그들을 신뢰하지 않고, 끊임없이 감시하고 경계하는 것. 그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명망 있고, 실력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 외에 공리라는 가면 뒤에 숨은 사리를 방지할 재간은 없다. 우리는 모두 이해관계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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