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춤법이 너무 어려워 하는 푸념
국어 문법은 학창 시절 국어와 멀어지는 계기였다. 중고교 시절 국영수 삼 대장 중 국어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어리석은 사람이면 일주일 만에, 총명한 사람이라면 반나절 만에 배울 수 있다는 한글 자모 체계 덕에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 중에 어리석은 사람도 국어 수업에 쉽게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자모 24자를 문법에 따라 조합하고 배열하는 일은 한글의 원리를 깨우치는 일과는 달랐다. 정규 교육 내내 매달려도 어렵기만 했다. 그래서 국어는 언제나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국어 문법에는 수많은 원칙이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러하듯 국어도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원칙보다 더 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그 예외들이 국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이시옷은 언제 넣고 언제 빼야 하는지, 곰곰이와 꼼꼼히의 차이는 무엇인지, 띄어쓰기는 언제 해야 하는지 등을 익히고 난 뒤 잔가지처럼 뻗어있는 예외 사항을 암기하다 보면 원칙마저 흐려지기 일쑤였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여서 올바른 맞춤법 구사 능력은 그 자체로 문화자본으로 여겨진다. 원칙에 맞게 국어를 사용하는 일은 장려할 만하다. 하지만 일부 맞춤법 박사들의 젠체하는 태도는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될 때도 있다. 뜻만 통하면 될 일을 굳이 빨간펜을 꺼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문화의 발흥은 맞춤법 문화자본을 전복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터다.
특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뜻도 형태도 낯선 한글 자모의 조합이 신성한 국어 문법을 흐리기 시작했다. 문법에 연연하지 않는 그들만의 신조어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내 모니터 밖 세상에까지 퍼져나갔다. 하루가 머다 하고 쏟아지는 '아헿헿'류의 신조어는 맞춤법 근본론자들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우리말이 망가지고 있다는 경각심이 일었고, 일각에선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도 펼쳐졌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의 우려가 기우에 그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국어 문법은 여전히 탄탄하고, 어려우며, 문화자본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한편 한글의 조형적 특징은 디지털 세상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탄생한 '신박하다'같은 신조어가 애당초 존재했던 단어처럼 방송과 신문에서도 널리 쓰이고, 댕댕이는 멍멍이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그럼에도 국어 문법은 중요하다. 원칙을 알고 비트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잘못 사용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꼼꼼히를 꼼꼼이로 쓰고 곰곰이를 곰곰히로 쓴다 해도 국어가 훼손되진 않는다. 맞춤법이 너무 어려워 하는 푸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