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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연습127] 꿀

- '가짜'정치인을 감당해야 할 리스크

by leesy

가족 중 누군가 사온 고급 꿀이 실은 가짜 꿀었던 경험은 매우 흔하다. 진짜 꿀과 가짜 꿀은 겉만 봐선 구분하기 힘들다. 소비자 입장에선 판매자를 믿고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온 꿀은 며칠간 이곳저곳에 쓰이다가 잊히기 마련인데, 시간이 지나 사용하려고 꺼내보면 꿀병 밑바닥에 설탕 결정이 가라앉아 있다. 그제야 꿀의 진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실망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선거철이면 때깔 좋은 후보자들이 유세차에 올라 화려한 언변을 뽐낸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며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를 드러낸다. 잘 짜인 공약들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들의 진심을 알 방법이 없는 유권자들은 진짜 꿀과 가짜 꿀을 구분할 수 없는 소비자의 마음과 같은 상태에 놓인다.


속는 셈 치고 표를 준 이들은 자주 유권자를 배신한다. 간과 쓸개까지 빼줄 것처럼 나라를 위하던 이들이 친인척 비리로 신문 지면을 채우고 막말 논란으로 유권자의 심기를 괴롭힌다.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일만 잘하면 괜찮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일처리마저 시원찮으니 그 결과로 정치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끝 간 데 없이 추락한다.


꿀 소믈리에(?)가 아닌 이상 진짜와 가짜 꿀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거나 생산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지지할 정치인을 선택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진정 국가를 위해 봉사할 인물인지, 아니면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쁜 사람인지는 당선 이후의 행보를 지켜보거나, 살아온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전자의 방법은 '가짜'일 때 리스크가 크니, 살아온 과정을 탐구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평생 약자를 등쳐먹고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부를 쌓는 일에 열중한 이가 정치인이 된다고 하루아침에 개과천선 할리 없다. 그런 이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살 확률이 높은데, 정치권력을 쥐었으니 스케일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표를 주는 것은 가짜인 줄 알면서도 가짜 꿀을 구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약을 보고 투표를 하라는 주장만큼 공허한 말도 없다. 공약은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후보자의 과거를 캐묻는 행위 모두를 네거티브 공세로 몰아가는 처사는 부조리하다. 유권자가 진짜 꿀을 고르는 선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흑색선전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네거티브라는 이유로 후보자의 과거에 대한 검증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 그것이 외려 왜곡된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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