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합의가 깨질 때 쏟아지는 비난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세상과 가장 넓게 만나는 존재다. 성문화된 법의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고, 전통과 관습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을 탐구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학자의 엄정함과 예술가의 자유분방함을 두루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전면적 진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면적 진실 탐구는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언론의 숙명이기도 하다.
쉽고 편한 일이었다면 숙명이 될 수 없었을 터다. 전면적 진실 탐구는 매우 고된 작업이다. 많은 시간과 돈이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닐 기자들이 필요하다. 다행인 점은 언론의 숙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일이 공동체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니, 고된 일은 감내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특혜 또한 주어진다.
한국의 언론도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누린다. 기자들은 전문직 대우를 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언론사는 정부로부터 광고비를 명목으로 막대한 금전적 지원과 함께 유무형의 자원을 제공받는다. 국가 기관을 비롯한 사기업에도 당당히 마이크를 들이밀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도 하다. 모두가 전면적 진실을 탐구하기에 주어진 특권으로, 사회적 합의가 없었더라면 허용되지 않았을 특혜다.
그러니 사회적 합의가 깨질 때 쏟아지는 비난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 기자들은 기레기를 거쳐 기더기까지 격하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한 집단을 싸잡아 멸칭을 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사회적 특권을 누리던 이들이 비하의 대상이 된 연유는 살펴볼 가치가 있다. 애석하게도 사회적 합의에 벗어난 기자들의 보도는 도처에 널려있다. 진신 없는 단편적 사실 보도, 속보 경쟁하에서 용인되는 오보, 입맛에 맞게 선택된 증언, 권력에 조아리는 보도가 그것들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만들었다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물은 탁해졌다. 누군가는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항변한다. 상황이 변해서 전면적 진실 탐구라는 숙명이 뒷전으로 밀렸다면, 사회적 특권도 내려놔야 한다. 기레기 현상의 이면에는 책임 없이 권리만 누리는 이들에 대한 불만이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존경은 더는 남아있지 않다. 종사자들 스스로도 언론을 사양 산업이라고 평가한다. 사회적 특권을 마지막까지 누리다 산화할 것인지, 혹은 전면적 진실을 추하며 좋은 언론으로써 수명 연장의 기회를 얻을지는 언론사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