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법의 잠정적 수혜자
국가보안법은 권력의 보험이다. 1948년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된 국가보안법이 어느덧 7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반면 우리의 국력은 북한을 견제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해 법의 필요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국내외에서 표현·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음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유는 악법의 잠정적 수혜자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보안법 적용의 모호성과 자의성은 태생부터 문제시돼왔다.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비치된 북한 서적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교사를 해직하고, 혁명 동지가를 불렀다는 이유로 시의회 의원을 면직할 명분이 된다. 이밖에도 누구나 접근 가능한 북한 영상물을 연구 목적으로 소지한 학자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하는 일도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적용 탓이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직업을 잃고, 명예를 잃고, 심하게는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국가보안법을 운용하는 검찰과 국정원은 없던 간첩도 만들어낸다. 군사 독재 시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 검찰과 국정원은 조작된 증거로 서울시 공무원에게 간첩 혐의를 씌웠다. 지난해 법원은 정부가 해당 공무원과 가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가 사법 체계가 간접 조작 시도를 막아냈다고 볼 수 있지만, 누명을 벗기까지 피해자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존치에 찬성하는 이들은 여전히 전쟁 중인 분단국가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경제·문화·군사적으로 북한 정권을 압도하는 대한민국이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해가며 북한 정권을 견제할 실익은 없다. 설혹 북한의 세습왕조를 찬양할 이가 있다 하더라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격차는 벌어졌다.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국가보안법이 없다면 마치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것처럼 사회 분위기를 몰아가는 이들은 공안정국의 관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일 터다. 당시를 추억하는 몇몇 위정자들은 언제든 활용 가능한 유용한 도구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철이면 등장하는 북한 관련 이슈로 이미 양치기 소년이 된 자신들의 처지도 깨달아야 한다.
누적된 조작과 억지의 역사로 국가보안법의 실체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사문화된 법인데, 없애기 위해 굳이 소모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권력의 보험처럼 작동했던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악법은 하루빨리 사라지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