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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연습135] 이자

- 그간 외면했던 방 안 코끼리의 존재

by leesy

암호화폐 시장이 주저앉았다. 대장주 비트코인 가격도 30% 이상 떨어지며 시장 참여자들의 발등을 찍었다.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유통과 채굴을 금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비트코인 상승세를 부추겼던 테슬라는 보유 중인 비트코인의 일부를 판매해 수익을 실현하며, 후발 주자들을 배신했다. 게다가 미국 경제 회복세가 예사롭지 않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조율하는 움직임이 읽힌다.


코로나 이후 국내 자산시장은 영끌과 빚투로 무장한 개인 투자자들이 주도했다. 암호화폐 가격은 김치 프리미엄이 붙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추락하기를 반복했다. 암호화폐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다시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신종 레버리지도 유행했다. 암호화폐 급락장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멘붕'에 빠진 모양새다.


시장이 이토록 과열된 데는 2030세대가 암호화폐를 마지막 계층 사다리로 여긴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국내 언론의 역할이 지대했다. 지난해부터 언론은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적극적으로 유통했다. 이 천박한 신조어는 지금 당장 어디든 투자하지 않으면, 곧 길바닥에 나앉게 되리라는 암시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암호화폐에 대한 무책임한 보도는 투자에 가장 무관심했던 이들마저 가장 위험한 투기판으로 뛰어들게 했다.


과열된 투자 열풍 속에서 투자자가 짊어질 리스크는 과소평가됐다. 사람들은 주머니를 탈탈 털고, 레버리지를 잔뜩 끌어 투자판으로 뛰어들었다. 투자처는 주택에서 주식으로, 주식에서 암호화폐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간 외면했던 방 안 코끼리의 존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전망치를 4%로 상향했다. 수출 호조와 백신 접종에 따른 내수 활성화를 반영한 결과다. 자연스럽게 금리 인상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만일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 빚은 1765조원이다. 금리가 1% 포인트만 올라도 이자 부담은 13조원가량 증가한다고 한다. 잠재적 벼락거지들에게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라는 신호를 줄곧 보내던 국내 언론은 이제 금리 걱정을 한 아름 안기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며 불안감에 빚을 냈던 이들은 이제 언론 보도를 통해 빚 걱정을 하게 됐다.


상황이 어찌 됐든 어떤 투자를 할지는 개인의 책임이다. 투자로 딴 돈을 남과 나누지 않듯, 잃은 돈도 보상받을 수 없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투자 열풍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에 가까운 사실 하나는 국내 언론은 개인 투자자의 자산 관리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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