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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연습139] 정의로운 전환

- 화석연료 시대에 축적한 역량

by leesy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유럽 국가들의 기민함을 보면 부러움과 동시에 아니꼬운 마음이 솟는다. 당당하게 기후정의를 외치는 모습이 다분히 위선적이기 때문이다. 서구 선진국은 200년 동안 분별없이 화석연료를 태워가며 지금의 화려한 문명을 이룩했다. 노예무역과 식민지 경영 등 반인권적인 행태는 덤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위기와 경제 양극화가 제3국가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 됐다.


기후위기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도 사실이지만 화석 연료 시대의 주도권을 잃어가던 서구 선진국들이 기후정의를 주장하기 시작한 시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유럽 국가들은 화석연료 시대에 축적한 역량을 동원해 기후위기 시대에 잃어버린 주도권을 되찾고자 한다. 유럽연합은 당장 친환경적이지 않은 제품에 대해 관세 페널티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기후정의가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했는지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에 대한 원조 등 지원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에서 열린 P4G 정상회의에서 한국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 산업화의 역사는 짧지만, 빠르게 성장한 덕에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는 세계 9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서 져야 할 책임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신경 써야 할 곳은 국제 관계만 아니다. 제조업 강국답게 국내 경제 구조는 철저하게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이 신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는 있지만, 모든 근로자가 대기업 직원인 것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처럼 기후정의를 외치며 전진하기에는 많은 일자리가 화석연료와 연계돼 있어, 대책 없이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다간 그만큼의 일자리도 사라질 공산이 크다.


예컨대 정부에서 자동차 회사에 인센티브를 주며 전기차 생산을 북돋을 때, 내연기관의 부품을 생산하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일감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석탄발전소는 기후정의를 위해 없애야 할 것 목록 1순위에 올라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발전소에서 생계를 유지한다. 아직까지 정부는 친환경 인센티브는 제공할지언정, 그로 인해 불안정 고용 상태에 놓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금 정의로운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기후위기 대처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선진국의 후발국가 원조만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대책의 전부는 아니다. 친환경 산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이들을 보살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기후정의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던지면서까지 기후위기에 헌신할 사람은 많지 않다. 너무 늦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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