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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연습140] 할당제

- 할당제가 유일한 답은 아니다

by leesy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낙수효과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한국의 격언마저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최근 정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화두 중 하나는 할당제다. 조직의 남녀 성비를 맞추거나 혹은 세대 별 대표성을 강화해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주장과 그것이 외려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부딪힌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윗물로 여겨지는 국회의 풍경은 어떨까.


성별, 세대 별 대표성의 관점에서 국회의 다양성 지수는 낙제점이다. 21대 국회의원 중 남녀 비율은 8대 2 수준이다. 또 50대 이상이 8할을 점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학력인데, 대졸자가 100%다. 게 중 또 상다수가 대학원졸이다. 이쯤 되면 국회가 정말 민의를 대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고 당장 성비를 반반 맞추고, 세대 별, 학력 별 인구에 비례해 국회를 구성하면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까?


그건 알 수 없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반드시 자신이 속한 성별과 학력, 세대를 대변한다는 보장이 없다. 남성보다 더 가부장적인 여성 의원, 20대 의원보다 더 사고가 유연한 70대 의원, 기성세대보다 더 순응적인 청년 의원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해야 일을 잘하는 사람을 국회로 보낼 수 있을 지다. 할당제는 그 목표를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의 정치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정의롭고 능력 있는 2030 청년이랄지라도 국회의원이 되기는 힘들다. 철옹성 같은 다선 의원들이 예비 정치인의 지역구 입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인의 진출이 가능하려면 상대적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할당제가 유일한 답은 아니다. 할당제를 두고 찬반으로 나뉜 지금의 논의는 더 나은 해법을 위한 상상력을 제한한다. 표의 적절한 등가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토론을 통해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아랫물의 사정도 윗물과 다르지 않다. 한국의 채용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남성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눈과 귀를 닫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차별은 학벌과 계층에서도 비롯된다. 오늘날 청년들 사이에 만연한 채용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오랜 시간, 간택받은 사람들이 정문이 아닌 옆문과 뒷문으로 드나들었던 역사가 켜켜이 쌓인 탓이다. 그 결과 윗물과 아랫물에 특정 성별과 연령, 계층들이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이다.


할당제는 그 모든 불공정의 역사를 단번에 정리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지름길엔 장애물이 많다. 여성 할당제는 가부장의 혜택을 누려본 적 없는 뭇남성들에게 좌절감을 안길 것이고, 청년 할당제는 누구보다 진취적인 중장년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을 터다. 그들의 불만에 '그건 오해다'라며 할당제의 효용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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