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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연습141] 배달

- 새로운 유형의 갑질

by leesy

8년 전 남양유업의 갑질 파동은 거국적인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건실했던 기업은 기업 이미지의 추락과 전례 없는 불매운동을 맞아 휘청였다. 최근 자사 제품이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효과적이라는 허위 과장 정보를 유포한 것이 논란이 되며 그 추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8년 간 남양유업의 행보는 그 자체로 시민과 기업들의 갑질 감수성 향상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신산업이 발흥하는 지금 새로운 유형의 갑질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거대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외주화된 갑질이다. 갑질의 피해자는 플랫폼 기업과 연계해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 혹은 개인 사업자들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남양유업을 나락으로 밀어낸 갑질이라는 껄끄러운 임무를 AI와 알고리즘에 외주화했다.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갑질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갑질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에게 신산업의 선봉장들은 AI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는데, AI가 데이터에 기반해 내린 결정이니 자신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갑질의 사례는 배달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근 MBC뉴스는 배달앱의 배달료 후려치기 관행을 폭로했다. AI가 배당한 콜의 배달 거리와 배달의 실거리가 현저하게 차이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거리에 비례에 배달료를 책정받는 배달 노동자 입장에선 더 고되게 일하고, 더 적게 벌는 셈이다.


과당 경쟁 속에서 적자 경영을 하고 있다는 배달앱들은 시장 점유를 향한 자신들의 욕망에 드는 비용을 배달 노동자 개인에게 청구하고 있다. 배달 노동자들은 배달앱이 통보한 시간에 맞춰 배달하기 위해선 교통 법규를 위반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도외시하는 배달앱의 행태는 신산업이라기보단 새로운 갑질이 더 적확한 표현일듯싶다.


AI든 알고리즘이든 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결과다. 기업이 소비자의 편의나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알고리즘을 설계했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업이 자신들의 이윤 창출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들의 이윤추구가 공동체에 끼치는 폐해를 억제하는 것은 사회의 당연한 책임이다.


우리의 삶은 기업이 설계한 AI와 알고리즘에 빠르게 밀착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갑질에는 분개하면서 AI 핑계를 들어 갑질의 책임은 회피하는 기업에 분노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잦다. 책임은 없이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면, 우리 사회가 왜 그 요구를 왜 들어줘야 하는가, 규제 완화가 새로운 갑질의 홍수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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