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늦은 대처리즘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은 인간사를 정글로 이해했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은 우주만물의 이치였다. 산업화로 쌓은 강대국의 국력은 자연스럽게 약소국을 식민화하는 데 쓰였다. 이전까지 나름의 질서와 관습을 갖고 살아오던 국가들은 대관절 미개인, 야만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극한의 착취와 학살 등 비인간적 대우에도 어쩔 수 없었다. 인간사는 정글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모이자 영국의 수상 마가릿 대처에게도 인간사는 정글이었다. '사회'는 없었다. 그의 세계는 제국주의 열강들처럼 무력을 허용하진 않았으나 '경제력'으로 인간 사이를 먹이사슬로 묶었다. 양차 대전을 거치며 약육강식의 질서를 회의하는 듯했던 세상은 돌고 돌아 다시 구체제로 회귀했다. 대처기 주도한 질서는 부의 총량을 빠르게 증식시켰다. 그리고 그만큼 부의 양극화도 심화했다.
반 세기가 지나서 성찰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계기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야기한 세계적인 재난이었다. 그간 외면해온 경제적 양극화가 가시화됐다. 먹이사슬 상층부의 자산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부풀었으나, 하층부의 삶은 더 쪼그라들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탓인지, 힘 좀 깨나 쓰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선 때늦은 대처리즘이 기승을 떨치고 있다.
그 선봉에는 30대의 젊은 야당 대표가 있다. 자신의 책에서 약육강식의 효율을 설파해온 그는 청년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게 다시금 구체제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는 '시험'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여기는듯하다. 시험을 통해 명문고를 거쳐 명문대에 진학한 그에게 시험이야말로 개인의 노력을 가장 공정하게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그의 말마따나 시험의 효용은 크다. 20세기 한국의 눈부신 성장은 시험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후발 국가인 한국은 선진국의 발전 경로를 답안 삼아 시험을 만들고, 점수에 따라 등수를 매겼다. 1등부터 꼴찌까지 먹이사슬이 생성됐다. 1등이 능력 좋은 부모를 만나 고액의 사교육을 받았든 꼴찌가 소년가장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그렇게 벌어졌다.
지금 세상은 약육강식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존의 길을 탐색 중이다. 이 같은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며 여전히 '시험'을 주창하는 이들이 답해야 할 질문은 21세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답은 무엇이며, 빈부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 시대에 공정한 시험이란 무엇인지다. 국가 의전 서열 7위인 제1야당 대표가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