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첫 주자’는 생경한 말이다
식당에 음식이 많으면 하나를 선택하기 힘들다. 음식명까지 비슷할 땐 어려움이 가중된다. 최근 대선 주자끼리 주고받는 기본소득 논쟁도 그렇다. 각자가 나름의 복지 정책을 주장하나, 이름만 미묘하게 다른 같은 지향을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기본소득의 특징은 정기성, 보편성, 현금지급, 무조건성 등이다. 주요 대선 주자들의 복지 정책을 살펴보면 이 같은 기본소득의 특징들에 중요도를 달리하며, 이름만 특색 있게 부여했을 뿐이다.
기본소득 논의가 핫한 이유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노동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일자리 증가 없는 경제 성장은 잉여 노동력을 만들었다. 경계하던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의 확장은 이제 현실이 됐다. 그 정점에 플랫폼 노동이 있다. 일시적 실직 상태를 견딜 수 있도록 보험금을 지급하는 현재의 복지는 불안정 노동 종사자를 위해 설계된 셈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불안정한 노동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등장했다. 인공지능의 탄생과 함께 ‘필요 없는 노동’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간 노동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기계가 노동을 대체한다면 권리를 행사할 수도, 의무를 이행할 필요도 없어진다. ‘밥벌이의 숭고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작금의 범람하는 기본소득류의 정책은 그러한 시대를 상정한 것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기본소득이 복지 정책이면서,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일을 대체한 인공지능이 사람의 소비마저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래전부터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고전경제학의 이론에 따라 전개된 경제 정책은 인공지능 시대엔 무용이 되는 셈이다.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은 ‘수요 창출’ 효과를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생산한 물건을 기본소득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해야 경제가 돌아간다 주장이다.
그럴듯한 문제의식과 해결책이다. 하지만 재원 마련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다. 결국 다들 재원 조달의 규모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한계를 높게 설정해 전 국민·동일 금액 지원을, 어떤 이는 한계를 낮게 보고 특정 범위·차등 금액을 주장한다. 그 외에 기본소득을 전격 도입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 또한 첫 주자로서의 부담감을 가중한다.
국민투표로 기본소득 도입을 기각한 스위스의 사례가 기본소득 도입 반대 이유로 자주 언급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무작정 폄훼는 옳지 않다. 하지만 선진국이 닦아놓은 길에 익숙한 우리에게 ‘첫 주자’는 생경한 말이다. 제도 도입과 실행 과정에서 예측 못할 변수가 기다릴 터다. 기본소득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 여기는 이들은 적절한 보완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