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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un 18. 2021

[작문연습151] 트로트

- 뉴미디어가 만든 새로운 풍경

 요즘 아침에 일어나 방을 나와 가장 먼저 듣는 소리가 있다. 엄마가 거실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보는 트로트 방송이다. 두 번 세 번 재생은 기본이다. 나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가수들을 엄마는 한껏 즐거운 표정으로 보고 있다. 뭐가 저렇게 재밌는 걸까. 아마 매일 밤 유튜브를 보며 낄낄거리는 나를 호기심에 쳐다보는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터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른 집도 우리집과 형편이 비슷한 것 같다.


 이는 뉴미디어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과거 볼 콘텐츠가 마땅치 않을 때는 온 가족이 프라임 시간에 모여 TV를 보는 일이 흔했다. 때로는 리모컨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집 TV에서 나오는 인기 방송은 옆집도 보고 아랫집도 봤다. 어떤 방송의 시청률은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40-50%에 육박했다. 그러니 다음날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모여 전날 본 방송에 대해 떠들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볼 게 너무 많다. 각자 취향에 따라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때때로 나는 알지 못했던 내 취향을 발굴하기도 한다. 이용자의 선택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모든 일은 스마트폰을 위시한 스마트기기의 발전이 가져다준 풍요로움이다. 개인 매체의 등장은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서도, 각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더 이상 리모컨을 갖고 다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각자가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했다 ‘할 말이 없는’ 상태다. 더 이상 우리집과 옆집, 아랫집 모두가 공유하는 콘텐츠는 없다. 상호 관심사가 겹치지 않으면 소비하는 콘텐츠도 상반된다. 게다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정보와 정서의 공유는 용이하게 했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터 버블과 확증편향에 대한 우려가 생겨났다.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 사회는 개별성과 특수성을 존중하기보단 통일성과 단합을 중시하는 문화가 우세했다. 모두가 짜장면을 시킬 때 짬뽕을 시키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고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런 역사에 비춰 뉴미디어 시대에 의견의 다양성과 관심사의 분화는 분명히 반길 일이다. 문제는 소통의 단절에 있다. 소통이 전제되지 않은 관심사와 의견의 분화는 상호 공감의 영역을 축소하고 이해의 폭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그 징조는 읽힌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묘사되는 우리 사회는 분절과 단절의 세상이다. 세대. 성별, 거주지, 학력, 소득 등 사람들을 구분 짓는 요소는 차고 넘친다. 반면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 노력은 보기 힘들다. 단언컨대 우리에겐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을 텐데 말이다. 내일부터는 나라도 엄마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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