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 빈 강정
ESG 열기가 뜨겁다. 시작은 코로나바이러스였다. 이전부터 ESG 경영의 필요성은 간간이 언급됐으나, 판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적 감염병 창궐이 환경오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발병 시기 전후로 이상기후 현상이 잇달아 발생했고, 큰 규모의 자연재해도 일어났다. 한국도 유난히 긴 장마와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 때문인지 특히 환경(E)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ESG 동향도 환경에 쏠려있다.
반면 다른 요소는 상대적으로 관심의 가뭄 상태다. 특히 노동(S)이 실종됐다. 국제적인 추세에 비춰 노동자의 안전은 ESG 경영 평가의 주요 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ESG 경영과 노동의 상관관계를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제계와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ESG는 대개 기업과 투자자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ESG 평가 지표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수년간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끊이지 않지만 ESG 경영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 노동자의 과로사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뉴스에 수차례 오르고 있지만 ESG 경영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기업도 있다. 이들 기업은 ESG 경영을 내세워 홍보에 열을 올린다. 환경과 공동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합의에서 등장한 ESG 경영은 어느새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K-ESG 지표 표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난립하는 평가 지표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기업의 등급을 매긴다는 비판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 정부가 마련한 지표가 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로울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힘겹게 통과했다. 하지만 원안에 비해 구멍이 숭숭 뚫린 법안조차 경영계는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처벌 조항이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에서다.
작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82명. 올해 1분기만 해도 238명이 출근 후 퇴근하지 못했다. 얼마 전 광주에선 철거 중인 건물이 버스를 덮쳐 17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경찰은 철거 현장의 불법 하도급 정황을 파악하고 관련자를 수사 중이다.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담보로 돈벌이하는 관행을 차단하고자 만들어진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일터의 안전을 사수할 적절한 대안 없이 개정만을 주장하는 것은 현상유지를 하자는 뜻과 다르지 않다.
ESG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국제 투자사들도 ESG 경영을 투자의 주요 지표로 삼겠다고 나섰다. 우리만 예외일 수 없다. 경제 규모에 걸맞은 기업 윤리를 세워야 한다. 일터의 안전에 무심한 작금의 ESG 논의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