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광의 역사만 기억하려는강박적 태도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나라’ 한국인이 일본에,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아닐까.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양국 정상은 수차례 담화와 협의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도돌이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각국 국민은 준거집단에 동화해 상대국가를 탓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엔 일본이 빠져나갈 길이 없게 됐다. 유네스코 등재 문화재 군함도 이야기다.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군함도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조선인 강제동원의 산실이자 인권유린의 현장인 콘크리트 인공섬이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일본 정부가 1940년대 조선인이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역사를 알리고, 당시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일본 정부는 약속 이행을 공언하고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내 태도를 바꿨다. 약속 이행에 대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고, 군함도와 동떨어진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열어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는 식의 역사 왜곡 자료까지 전시했다. 희생자를 기리는 일 또한 없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거듭된 약속 미이행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는 전례 없는 표현까지 써가며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군함도의 실체를 공표하는 일이 일본 정부로선 탐탁지 않을 터다. 가뜩이나 한일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법원은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렸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 또한 명시했다. 이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비쳤던 일본 정부로서는 강제징용의 산실인 군함도의 치부를 가리고 싶을 것이다.
격화하는 한일 관계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 전쟁’이 경제와 외교로까지 비화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작금의 충돌은 영광의 역사만 기억하려는 일본 정부의 강박적 태도에서 기인했단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영광의 역사라는 것도 실상은 이웃 국가를 강탈하고 인권을 유린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피해 당사국으로서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의 강박에 우리가 동조할 이유는 없다. 우리 정부는 비극적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국력을 기르고, 일제하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과업을 위한 길목에 군함도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유네스코와 함께 일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