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잡다단한 ‘취재윤리’를 단순한 법 조항쯤으로 격하
기자의 취재윤리는 법 조항처럼 깔끔하지 않다. 언론사별 취재윤리규정을 마련해두긴 하지만, 핵심은 기자의 경험과 언론사의 역사가 쌓은 암묵지에 있다. 문서로는 정립할 수 없는 ‘감각’이 중요한 셈이다. 상황과 사안에 따라 고무줄처럼 움직이는 취재윤리가 못마땅할 수도 있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려는 기자의 노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취재원을 협박한 혐의를 받던 방송사 기자에게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기자는 구치소 재소자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내 여권 인사의 비리 폭로를 종용했다. 재판부는 언론인의 취재 행위를 형벌로 단죄하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면서 기자의 강요미수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언론인이 가족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언급하며 구치소 수감자를 압박한 것은 취재 윤리 위반에 해당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했다.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일부 언론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지켜준 사법부에 경의를 표하고 나섰다. 취재 행위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수용하지 않으려는 언론인들의 태도는 복잡다단한 ‘취재윤리’를 단순한 법 조항쯤으로 격하시켰다. 불법이 아니니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명백한 취재 윤리 위반에 대한 비판도 ‘진실’을 찾기 위한 기자를 억압하는 일로 둔갑시켰다. 취재 윤리에 깃든 암묵지를 내팽개친 것이다.
언론 행위의 무게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번 판결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무죄가 아니라 '취재윤리 위반'일 터다. 자유에 따른 책임을 부담할 생각이 없는 이들은 그 반대를 선택했다. 이는 우리 언론의 오랜 악습이다. 뉴욕타임스가 161년 전 오보를 정정하며 오보의 경위까지 밝히는 꼼꼼한 정정기사를 내보내고, BBC가 오보로 인한 피해자에게 수억 원대 보상금을 자발적으로 지급할 때 자유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 언론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이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언론중재위법 개정안을 예고했다. 핵심은 허위·조작 보도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언론사에게 피해 규모의 3-5배에 달하는 징벌적손해배상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밖에 정정보도 청구 사실을 인터넷 기사 제목이나 본문 상단에 표시하도록 하는 조항도 있다. 이에 대해 언론 단체들은 ‘재갈 물리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의 완결성은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언론의 도덕적 해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론이 내세우는 자정능력은 실종 상태이다. 그 어떤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 언론을 볼 때면 “우는 아이와 지토(지방 관리)는 못 당한다”는 일본 속담이 떠오른다. “우는 아이와 언론은 못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