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 낙엽

- 이제 가을은 추락의 계절이다

by leesy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어떤 낙엽은 추락하듯 떨어지고 어떤 낙엽은 착지하듯 떨어진다. 반면 나뭇잎 줄기로 나뭇가지를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파리들도 있다. 이처럼 가을 찬바람을 맞이하는 나뭇잎들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이 낙엽들 사이를 지나는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몰락하듯 떨어지고 누군가는 여유롭게 떨어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낙엽의 추락 속도는 이파리 속 수분 함유량에 좌우된다면 인간의 추락 양상은 부(富)의 크기가 결정한다. 돈이 많을수록 추락의 가능성은 적어진다. 추락하더라도 연착륙한다. 순풍이 불어온다면 언제든 상승의 꿈을 펼칠 수 있다. 반면 돈이 적을수록 몰락의 속도와 충격은 증가한다. 회생을 꿈꾸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언제부터 우리들의 추락 속도는 이처럼 제각각이게 된 걸까.


원시부족 사회를 제외하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추락했던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 구성원들의 추락 속도가 차이 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은행 이자를 차곡차곡 모아 비상을 꿈꾸던 세상은 사라졌다. 당시 한국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금 모으기 운동 등 인류사에 전례 없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그러나 정리 해고의 칼바람은 공동으로 대응할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됐고, 그 틈에서 누군가는 부를 쌓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상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하다못해 추락하는 속도라도 늦출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벌써 포기할 정도로 모두가 비상의 꿈을 품고 있던 고도성장기의 한국은 먼 과거가 아니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계속된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락의 속도는 더욱 벌어졌다. 그 사이 누군가는 또 돈을 벌었다. 이제 사람들은 비상을 꿈꾸지 않는다.


추락의 속도차가 증가하는 동안 정부 정책은 속수무책이었다. 실정이 또 다른 실정을 덮었다. 그 결과는 순풍이 되어 오직 소수에게만 날개를 달아주었다. 정부 시야에는 오직 이들만이 남아있었다. 정부는 날아오르는 소수를 보며 정책 효과를 자화자찬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 대다수는 추락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정책 입안자들의 시야에 머물 기회도 박탈당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올 가을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위기까지 덮쳤다. 추락하는 이들에게 천고마비란 오래전 소실된 계절감이다. 독일의 시인 잉게르보르크 바하만의 시구처럼 추락하는 모든 것에도 날개가 있을까? 회의(懷疑)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가을은 추락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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