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4] 장마

- 농부와 기후 위기

by leesy

농부의 최대 덕목은 성실이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곡식이 여물기를 기다린다. 가을에 곡식을 추수하고 겨울에 다음 파종을 준비한다. 농부는 동일한 노동의 순환을 매해 반복한다. 이 같은 사이클에 성실하게 임하면 농부의 역할은 끝난다. 남은 것은 하늘의 몫이다. 농사를 진인사대천명이라 일컫는 이유다. 농사는 성실함이 전제된 상태에서 하늘 뜻을 살피는 일이다. 농업이 근간이었던 우리나라가 절기를 세세하게 구분해온 이유다.


그렇다 보니 농부들은 날씨 변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절기에 어긋나는 나는 날씨는 1년간 축적한 노동의 가치를 수포로 돌릴 위험이 크다. 요즘에야 농업 기술의 발달 덕에 이 같은 변수를 일정 정도 예방할 수 있다지만, 한정적인 보완책일 뿐이다. 하늘의 뜻을 살피는 농업의 특성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환경오염에 의한 기후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한 이들도 농부들이었다. 대다수가 도시에 거주하는 현대인과 농부의 계절감은 괴리돼있다. 오늘날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후위기(Climate crisis)란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제야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기술도, 재산도, 새로운 문화도 금방금방 만들어 내던 21세기형 인간은 코앞에 닥칠 때까지 거대한 재앙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쩌면 있는 힘껏 외면한 결과일 수도 있다. 도시라고 기후 변화를 느끼지 못했을까. 기후 변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은 안락한 21세기형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신 대증요법을 따랐다. 예년보다 더운 날엔 에어컨을 더 오래 틀면 된다. 더 추운 날에는 히터의 온도를 높이면 된다. 이토록 쉬운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후 변화에 경각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도시민과 달리 농부들은 기후 변화를 외면할 방법이 없다. 일찍부터 기후 변화가 주는 고통에 직면해온 농부들은 이제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다. 수전 손택이 얘기한 ‘타인의 고통’이란 저 멀리 미국에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거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농민들의 앓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올해는 기록적인 장마로 농민들의 피해가 더 막심하다. 환경오염이 야기한 이상 기후 때문이다. 야외 활동이 제약받고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자 사람들 입에 기후 위기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번엔 대증요법이 아닌 원인을 해결을 기대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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