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 속 노동이 현실의 노동과 일치할 때까지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현실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답변을 교과서 같다고 말한다. 교과서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도 현실을 가르치진 않았다. 대신 우리 사회의 모범상을 제시할 뿐이었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누구도 확인한 적 없는 이상향에 가까운 사회상이다. 교과서를 통해 올바른 사회상과 바른 인간관계 등을 학습해온 학생들은 현실 사회에서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특히 노동자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게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과서는 노동이 자아실현의 한 방편이라고 가르친다. 자아실현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일 게다. 학생들은 장차 사회 일원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수호하며 자아를 실현해갈 꿈을 키운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에 자아실현이 끼어들 틈은 넓지 않다. 대다수는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경험을 하기 어려운 노동환경 때문이다. 교과서 밖 현실에서 노동은 자아실현의 방편보다 생계유지의 수단에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노동이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은 아니더라도 자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아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일터에선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일터는 차별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중소기업이 차별받고, 하청 업체가 차별받으며, 비정규직이 차별받는다. 차별은 자아를 파괴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가장 차별받는 이들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매년 3000명에 이른다.
그간 법과 제도는 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50년 전 산화한 전태일이 계속해서 소환되고 있다. 차별에 지친 노동자들은 전태일3법의 입법을 부르짖고 있다. 전태일3법은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다. 중대 재해를 방조한 기업을 처벌을 강화하는 법 또한 담고 있다.
재계를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은 전태일3법이 기업의 경영 환경을 악화시키는 법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영 편의주의가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압도해 온 한국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주장이다. 편리한 기업 운영을 위해서라면 노동자의 자아가 파괴되고 안전이 도외시되는 현실은 감내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은 50년째 표류하고 있다.
전태일3법이 도입되더라도 노동환경이 순식간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도는 바뀌어도 경영 논리가 지배하는 노동문화가 개선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지(之) 자를 그릴지언정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교과서 속 노동이 현실의 노동과 일치할 때까지 분주히 움직여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