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자리 걷기뿐이었다
“제자리 걸어! 가만히 있으면 발가락 동상 걸린다!”
의무경찰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서울의 겨울이 이렇게 춥다는 사실을.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 가만히 서 있노라면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느낄 수 있다. 30분쯤 지나면 신체 말단 부위가 아리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마다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고 손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해야 한다. 처음에는 얼어서 잘 움직이지도 않던 손발에도 차츰 온기가 퍼진다. 왜 귀는 따로 움직일 수 없는 건지 아쉬운 순간이다.
의무경찰로 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때는 한여름이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경비가 그날의 업무였다. 한낮의 땡볕이 작렬하는 시간이었고 나까지 세 명은 그 열기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어째서 파라솔 하나도 설치해주지 않는 걸까. 태양 빛을 피할 곳은 챙이 그리 길지 않은 모자 속뿐이었다.
“여름도 겨울도 둘 다 힘든데, 여름은 죽고 싶고 겨울은 살고 싶더라. 왤까?” 고참이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한 말은 군 생활 내내 나의 계절감을 지배했다. 한낮의 태양 빛 아래에서 죽고 싶었던 그 날의 난 한겨울 한파 속에선 살고 싶었다. 무더위 속에서는 힘들어도 정말로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라도 근무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반면 한파 속에선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느껴졌다. 그래서 생존 욕구가 상승한 것이다. 공룡의 멸종이 빙하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무더위 학설보다 더 유력하지 않나.
의경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은 비단 가혹한 추위만은 아니었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시위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입대 전에는 왜 이 많은 사람들을 보지 못했던 것인지. 크고 작은 시위가 1년 내내 계속됐다. 난생처음 보는 단체들이 저마다의 구호를 앞세워 광장으로 모였다. 시위의 규모는 수십에서 수만까지 다양했다. 대다수 시위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규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간혹 가다 아침에 시작한 시위가 자정을 넘기는 경우가 있다. 그때가 한겨울이라면 재앙이었다. 미처 새벽 추위를 대비하지 못한 채 근무에 나선 탓이다. 그럴 때면 시위대를 향한 의경들의 원성이 잦아졌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를 힘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시위대는 그들의 절박한 사정은 잊힌 채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한다
간혹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바라는 이들도 나온다. 둘 사이의 힘겨루기는 추위를 이기는 데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겨울 추위와 밤샘은 사람의 인내심을 빠르게 소진시켰다. 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과 부딪혀 살 궁리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자리 걷기뿐이었다.